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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짝퉁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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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짝퉁 루스벨트?

입력
2008.10.1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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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경제위기로 삶이 얼마나 고단합니까?" 대공황으로 모두들 고통에 신음하고 있던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난로 옆에서 나누는 '노변담화'같이 친근한 스타일의 라디오 국정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75년이 지난 현재 세계는 다시 미국발 금융대란으로 끝없는 나락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세계6위의 외환보유액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잃어버린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환율이 급등하는 등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일방통행식 노변담화는 곤란

그러자 이명박 대통령이 루스벨트를 본받아 매주 라디오 연설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자 상황의 유사성을 생각할 때 루스벨트 식의 실험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하는 이유를 듣는 순간 그 같은 공감은 사라졌다. 청와대는 "정부의 정책과 비전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오해를 사고 혼선을 빚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정책은 문제가 없는데 홍보가 문제라는 이명박 정부의 홍보 타령이 도진 것이다.

사실 며칠 전에도 이 대통령은 "정부 각 부처의 최고 인재들을 홍보업무에 배치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또 노무현 대통령 시절 기자실 폐쇄 등을 주도해 문제가 됐던 국정홍보처를 없앴지만 국정홍보기획 내년 예산은 올해의 72억원이나,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해였던 지난해보다 50억원이나 많은 187억원을 요청했고 관련요원도 64명이나 증원을 요청했다.

즉 이 대통령이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자신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대해 "정책은 옳은데 홍보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아니 최고 인재들을 금융위기 극복정책 등 올바른 정책 수립에 투입해야지 왜 홍보에 투입하는가? 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설교하는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대통령이 듣도록 만드는 '라디오 신문고'나 쌍방향의 '인터넷 국민과의 대화'이다.

주목할 것은 이 대통령이 루스벨트를 형식에서는 모방하고 있지만 내용과 정책은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루스벨트는 위기 극복을 위해 최저임금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보장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입안해 라디오 연설을 통해 여론을 모아 관철해 나가는 국민통합전략을 폈다.

이 대통령은 정반대로 라디오 연설을 통해 1%의 강부자를 위한 종부세 완화정책,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루스벨트 식의 '일 국민정책'이 아니라 점점 잘 사는 소수와 점점 못사는 다수로 분열시키는 '두 국민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시중에 나가면 우리는 전문가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품을 그대로 복사한 짝퉁 명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모양이 비슷하더라도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은 것은 짝퉁일 따름이다. 아니 최근 발암물질이 발견되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중국산 짝퉁 명품 신발이 보여주듯이 이 같은 짝퉁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중요한 건 홍보가 아니라 통합

금융위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국정연설이라는 형식을 빌릴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국민들을 통합한 루스벨트와 달리 1% 강부자를 위한 정책을 설교하려 하는 한 이 대통령은 무늬만 루스벨트를 닮은 '짝퉁 루스벨트'를 벗어날 수 없고 노변담화 역시 멜라민이 듬뿍 섞인 '짝퉁 노변담화'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홍보가 아니라 정책 내용이며 루스벨트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국민통합적 정책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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