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원 박모(35)씨는 올해 연말 결혼할 예정인 여자 친구와 며칠 전 크게 다퉜다. 지난해 말 두 사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9,000만원을 여자 친구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펀드에 몰아 넣었다가 큰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중국 관련 펀드는 반 토막이 난지 오래고, 리먼브러더스 관련 펀드에 넣은 돈은 현재 '지급 불능 상태'라서 뺄 수도 없다. 더욱이 최고 우량주라는 판단에 수백만원의 비상금을 털어 샀던 국내 주식까지 망가졌다. 이제 남은 원금은 투자액의 50%도 안 된다.
#2. 다음달 결혼을 앞둔 직장인 차모(32)씨는 당초 계획을 바꿔 결혼 후 친정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차씨는 결혼 자금을 불려보겠다며 지난해 가을 8,000만원을 3개 펀드에 나눠 넣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평균 수익률이 –40%를 넘어서면서 남은 돈이 5,000만원도 채 안 된다. 게다가 남자 친구도 비슷한 시기에 주식형펀드 등에 5,000만원 넘는 돈을 넣었던 터라 충격은 이만저만 아니다. 차씨는 "전세 자금으로 모아 둔 1억원 가까운 돈이 1년 남짓 만에 사라져 버렸다"며 "혼수 비용도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국내 펀드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특히 결혼자금을 펀드에 넣어 뒀던 20~30대 처녀 총각들이 밤잠을 잘 못 이루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예ㆍ적금 등을 통해 불려온 돈을 몽땅 펀드에 투자한 경우. 좀 더 여유 있고 멋진 결혼 생활을 위해 차곡차곡 모아 뒀던 돈이 불과 1년 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셈이다. 부동산이 자산의 80% 이상 되는 기성 세대와는 달리 전재산이나 다름 없는 예ㆍ적금을 깨서 펀드에 '올인' 한 상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PB 관계자는 "20~30대 고객의 경우 투자 성향이 공격적이어서 여러 곳에 나눠서 재테크를 해보라고 권해도 펀드만 고집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특히 결혼 자금을 펀드에 잠깐 넣어 불렸다가 결혼 준비에 쓰려던 고객의 손실 규모가 커서 안타깝다"고 전했다.
더욱이 결혼을 앞둔 일부 젊은 직장인 중에는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펀드에 가입한 경우가 많다. 지난해 주가가 크게 올라 펀드 수익률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면서 직장 마다 펀드 열풍이 몰아쳤고, 여유자금이 부족한 직장인들이 앞 다퉈 신용대출 등으로 투자액 마련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대출 금리가 크게 치솟아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은행원 김모(34)씨는 지난해 말 전세 자금으로 대출 받은 1억5,000만원 중 5,000만원을 펀드에 가입했다가 절반 가까운 돈을 잃었다. 더욱이 대출 이자로 다달이 수십 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김씨는 "내년에는 반드시 결혼할 생각이었는데, 전세 자금을 상당 부분 날렸으니 1년 정도 미뤄야 할 것 같다"며 "주식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내년에도 전망이 어둡다니 큰 일"이라고 걱정했다.
당장 여윳돈은 모자라고 그렇다고 증시가 폭락한 지금 주식을 팔기도 힘든 상황이다 보니 혼수 비용을 대폭 낮추거나 결혼 계획을 아예 연기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집 마련 비용까지 펀드에 묶여 있는 예비 부부들은 어쩔 수 없이 부모 집에 얹혀 살기로 하거나 계획보다 더 싼 집을 찾느라 발품을 팔고 있다. 하지만 집값 하락으로 전세 선호 현상이 두드러져 이마저도 녹록치 않은 게 현실이다.
신혼 여행지를 해외에서 국내로 바꾸는 이들도 늘고 있다. 11월 결혼 예정인 회사원 이모(33)씨는 "펀드 손실이 40%를 넘은 데다 환율마저 폭등해 해외 신혼여행의 꿈을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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