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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빈곤 대국 아메리카' 美의 경제 파탄과 어두운 현실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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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빈곤 대국 아메리카' 美의 경제 파탄과 어두운 현실 고발

입력
2008.10.1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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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미 미카 지음ㆍ고정아 옮김/문학수첩 발행ㆍ224쪽ㆍ1만2,000원

당신은 혹시 주변에서 이런 미국 음식을 실컷 먹어보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마카로니&치즈',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밥이 되는 '미니츠 라이스', 두 달이 지나도 곰팡이가 슬지 않는 식빵…. 각각 1달러 50센트, 99센트, 1달러 30센트 한다.

이들 음식은 미국을 양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음식을 먹는 일이 문자 그대로 '다반사(茶飯事)'지만 일부 미국인들은 손에도 대지 않는 음식이다. 그 결과, 미국은 '살 찌는 유색인' 대 '다이어트에 땀 빼는 백인'으로 나뉜다. 허기에 쫓겨 헐한 고지방식에 의존해야 하는 유색인의 절망을 딛고 선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이 그렇게 굶고 있다니? 웨스트버지니아, 텍사스, 하와이,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평균소득이 낮은 미국 남부 지역의 대표적 도시들이다. 맞벌이 부부나 빈곤지역 아동들을 위해 1966년에 시작된 '무료 할인 급식 제도' 시행 이후 해당 지역 학교들은 대형 패스트푸드 기업과 계약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맥도날드, 피자헛, 버거킹, 도미노피자, 웬디스…. 한국 아이들의 입맛을 장악한 낯익은 이름들이 확인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경기침체로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자 1920년대의 대공황이 반면교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당시의 재앙에서 현재의 문제를 유추하기도 하고, 인종 문제 등에 대한 철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제안들이 거기서 나온다.

미국이라는 중환자의 분비물을 밑바닥에서부터 긁어가는 이 책 <빈곤 대국 아메리카> 의 접근법은 미국의 기괴한 현재를 명료하게 제시한다. 미국은 어떻게 중산층을 끝장내는가?

두 개의 미국. 부시 정부가 들어선 이래 미국의 빈곤층은 더욱 증가, 6,000여만명의 미국 국민이 하루 7달러 이하의 수입으로 버티고 있다(2006년 미국 국세청 발표). 연방긴급사태관리국(FREMA)측은 2005년 미국을 강타한 태풍 카트리나가 남긴 참화는 인재(人災)였다고 실토했다. 의약품 서비스 민영화를 위한 설득 작업에 골몰해 있던 부시 대통령의 태도가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유경쟁이라는 기치 아래 진행된 민영화는 백인들만을 위한 '민족 정화 작업'의 일부라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이 아니라 쿠바였다면 우리 애는 살았을 거예요." 의료보험비를 감당하지 못해 진찰 한 번 받지 못하고 유행병에 걸린 한살바기를 잃어야 했던 어머니의 항변에는 피가 맺혀 있다. '자기 책임'이라는 명목 하의 비싼 보험료를 댈 수 없었던 것이다.

대기업을 윤택하게 만들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미국판 '기업 프렌들리' 정책으로 중류층은 세계 최고의 의료비 앞에서 파산해야 했다. 턱없이 높은 병원비 때문에 출산 당일 퇴원하는 산모들, 링거를 꽂은 채 병원을 나서는 환자들도 낯선 일이 아니다. 9ㆍ11 이후 가속이 붙은 '작은 정부'와 '큰 시장' 정책이 미국인의 생명, 생활, 교육 등 일상을 침윤해 가는 과정이 이 책에서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파견이라는 순수한 비즈니스입니다." 모병 광고는 구직난과 빚(학자금, 카드 체납 등)에 쫓기는 미국 대학생에게 희망이었다. 대학생들은 육군이 440만달러를 들여 개발한 전투 게임에 매료돼 입대, 이라크 등 미국의 전쟁터에 뛰어들어 보지만 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불안, 불면, 과도한 공격성 등 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다 노숙자가 된다.

미국은 '정보의 지옥'이기도 하다. 9ㆍ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미국 정부는 온갖 방법으로 개인 정보를 입수할 수도, 영장 없이 도청할 수도 있게 했다. 테러는 일단 국지적이지만 부시가 펼치고 있는 민영화 정책과 그 여파는 당장 글로벌하다.

저자 츠츠미 미카(堤未果)는 뉴욕의 증권사에 근무하던 중 9ㆍ11 테러를 겪고 미국의 빈부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려 온 여성 저널리스트다. 현재 일본에서 이 책은 단기간에 20여만부의 판매를 기록, 아사히신문 등 굵직한 언론들이 관련 특집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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