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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열한번째 소설집 '지금 행복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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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열한번째 소설집 '지금 행복해' 출간

입력
2008.10.1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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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일상과 여행의 관계는 현실과 문학의 관계와 비슷한 것 같아요. 여행이란 돈을 벌어야 하는 딱딱한 일상에서 떠나 재충전하는 것이고, 문학은 현실의 이면을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사람이 건전지인가요? 재충전하게…"

그가 작품들에서 능란하게 구사하는 예의 뼈있는 농담으로 열한번째 창작집 <지금 행복해> (창비 발행)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여행의 의미를 설명하는 소설가 성석제(48)씨. 입담 만으로도 서사를 장악하는 드문 재능을 마음껏 보여주었던 성씨가 이번 창작집에서는 수많은 동서고금의 이야기꾼들이 서사적 장치로 삼아왔던 여행을 도구 삼는다.

9편의 수록작 중 5편의 소재가 여행이다. 집을 떠난 뒤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돌아온다는 여행소설의 상투적인 서사전략은 물론 성석제의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여행은 평소 억눌려 있던 일상인들의 소시민적 근성, 속물 근성이 난데없이 터져나오는 무대다.

단편'여행'은 스물두살 시골 청년 세 명의 무전여행기다. 청년들은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자며 호기있게 길을 떠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된장찌개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 누가 가벼운 짐을 질 것이냐 같은 문제로 티격태격한다.

서로에게 환멸감을 느껴가는 청년들을 결속시키는 것은 말보로를 피우며 빨간 스포츠카에 아이스박스를 싣고 온 귀공자 같은 청년들이다. 이들에게 한 끼를 잘 얻어먹은 시골청년들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자신들과 그들과의 계급적 차이에 자괴감을 느끼고 느닷없이 시비를 건다.

그들을 흠씬 두들겨 팬 뒤 불현듯'쪽팔림'을 느끼고 여행지를 헐레벌떡 도망쳐 나오는 시골청년들. 이들은 '산다는 게 별거 있나. 이렇게 치사한 거야'를 몸으로 보여주는 도박꾼, 양아치, 도둑, 춤꾼 같은 성석제표 삼류인간들의 재현이다.

"깽판치고 한판 붙고 도망치는 청년들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움을 떠안고 살아가는 것도 인간입니다. 이들이 귀공자 청년들과 잘 어울려 건전가요 부르고, 수건돌리기 하고 나왔어야 하나요? 그런 세계는 나쁜 세계죠."성씨는 말한다.

여자, 노름, 마약, 알코올에 중독돼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와 재수생 아들의 이야기인 단편'지금 행복해'에는 부도난 가족신화의 배후를 꿰뚫어보고 희망을 건져내려는 작가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평생 가족이라고는 챙기지 않고 살아온 아버지에게 아들은 도저히 아버지란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발로 알코올 중독자 요양시설을 찾아갔다가 그곳에서도 소주로 회포를 달래고 있다는 문자를 보내온 그 구제불능의 아버지를, 아들은 결국 '눈물중독자'라며 긍정한다. 무엇엔가에 중독된 채 살아가는 그 디오니소스적 인간에게 작가는 비인간화된 현실 속에서도 인간관계의 복원이라는 희망을 투사한다.

아들이 아비를 목조르고, 아비는 콜라병으로 아들의 머리를 후려치고, 딸은 아버지를 조롱하는 가족을 등장시켜 적막한 가족관계의 현실을 데생했던 지난 창작집 <참말로 좋은 날> (2006)을 내놓고 나서 몹시 우울하고 힘들었다는 성씨는 "가족해체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면 '이것으로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성씨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똘똘 뭉쳐 맞서고 기쁜 일이 생기면 함께 나누는 '가족보다 더 가족적인' 인간관계를 소재로 한 장편을 구상중이라고 했다.

한 집에서 삼시 세끼를 함께 먹으며 지내는 가족보다 싸이월드의 일촌들에게 내밀한 고민을 털어놓는 우리 사회 인간관계의 현실을 '시대의 전위에 선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그가 어떻게 그려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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