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시장을 책임지는 정부 당국자들의 심기는 매우 불편하다. 비이성적으로 치솟는 환율과 싸워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한국 경제의 위기를 자극하는 외신들의 보도 행태에 더욱 화가 치민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 정책을 지지해주지 않는 국내 언론에 대한 서운함도 적지 않지만, 다분히 악의적인 외신들의 보도엔 정말 발끈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원문에도 없는 끔찍한 용어가 등장하고, 사실은 입맛대로 왜곡되기 일쑤다. 고의가 아닌 실수라고, 또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외신은 해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거의 유일한 창구다. 외신의 부정확하고 왜곡된 보도는 지금 한국 경제의 어려운 상황을 더욱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는 9일 보도 해명자료를 냈다.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영자신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전날 게재한 '한국의 은행들 과거 실수 망각'이라는 기사에 대한 것이었다.
기사의 요지는 한국 은행들이 1997년과 같이 달러를 빌려서 원화로 대출을 했고,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 전제가 잘못됐으니, 결론 역시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금융위는 "6월말 현재 외화 부채는 2,362억달러, 외화자산이 2,277억달러"라며 "외화로 조달한 자금은 대부분 외화로 운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날인 8일 미국 통신사 다우존스가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사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보도한 기사는 사실 왜곡의 전형이었다. 다우존스는 "피치사가 '한국 은행에 지급불능(insolvency) 징후가 있으며 이것이 한국 국가신용등급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보도했고, 이 평가가 시장에 전해지면서 이날 환율 폭등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피치사에 직접 문의한 결과 기사 내용은 실제 인터뷰 원문과 확연히 달랐다. 피치사가 다우존스에 보낸 이메일 답변은 "만약 유동성 압박(liquidity squeeze)이 지급불능 문제로 번진다면,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원론적 수준에 불과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6일 보도한 '한국의 은행들' 기사 역시 몹시 자극적이었다. 기사는 ▦민간 부문의 과도한 부채비율 ▦은행 자금조달의 높은 해외 의존도 ▦중소기업 대출 편중 ▦세계경제 침체에 따른 수출 타격 등을 근거로 '한국은 아시아에서 금융위기의 감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단정했다. 이에 대해 재정부는 직접 브리핑을 자처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미국과 영국보다 낮으며, 선진국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수출 호조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등 조목조목 반박했다.
앞서 지난달 1일 영국의 더타임즈는 "한국이 검은 9월로 치닫고 있다"는 제목으로 당시 시중에 떠돌던 '9월 위기설'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이 권장하는 적정 외환보유액 기준을 엉터리로 보도하는 등 기사 내용은 왜곡으로 가득했다. 결국 '9월 위기설'은 허구로 결론이 났지만, 우리 경제가 치룬 유무형의 대가는 엄청났다.
정부는 향후 악의적 외신 보도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나섰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기껏해야 보도가 된 이후 사후적인 해명을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재정부 관계자는 "특정 언론의 동일 기자가 반복해서 위기를 조장하는 보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상당히 악의적인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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