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정책'(Ostpolitik)이라고 하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떠오른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슈미트를 거쳐 콜 총리까지 정파를 넘어 계승되었고,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동방정책 때문에 브란트가 의회 불신임 위기까지 몰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72년, 기민/기사연합(CDU/CSU) 등 당시 야당들은 브란트가 동유럽에 굴복해 독일을 넘긴다며 맹비난했던 것이다.
이루어진 브란트의 동방정책
사실, 냉전 최전선에 서있는 서독의 총리가 베를린 장벽을 넘어 동독을 비롯한 동구권에 손을 내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분단을 고착시킬 뿐이다", "헌법에 위배된다"는 등 쏟아지는 비판 속에 정치적 생명을 걸고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또 브란트 이후의 서독 총리들이 초당적으로 동방정책을 추진한 까닭은 무엇일까?
브란트는 "서방과 동방 중간에 갇혀서는 우리 민족의 이익이 보호될 수 없다"고 하였다. 브란트는 동방정책을 통해 통일을 이루고 독일을 '유럽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신념을 지켰다. 독일 국민들은 이 신념을 지지했다. 불신임 투표 6개월 후 치러진 선거에서 브란트의 사민당은 사상 최고 득표로 재집권했다. 그의 꿈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이제 독일은 인구 8,200만 명에 세계 3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며, 통일 이후 유럽의 동진을 주도하면서 명실상부한 유럽의 중심이 되고 있다.
한 나라가 자신의 지정학적 위치를 정확히 조명해 미래를 개척하는 것은 국운을 좌우한다. 싱가포르를 보라. 동남아와 태평양의 사람과 물자, 돈을 효율적으로 연결하여,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아시아 허브'로 성장하였다. 두바이의 경우, 넓게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좁게는 아라비아반도 이란 이라크를 잇는 지정학적 관문이라는 조건을 활용해 불모의 사막을 물류ㆍ비즈니스ㆍ관광ㆍ금융의 메카로 만들었다.
우리도 2차대전 후 가장 성공한 국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성장동력 창출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세계를 엄습한 금융위기는 또 하나의 도전이 되고 있다. 지정학적 강점을 재조명하여 미래를 개척할 때다. 해양과 대륙을 잇는 위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분단 속에 동북아의 '섬 아닌 섬'으로 머무는 한, 정치력과 경제력을 갖춘 선진대국으로 도약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독이 동방정책을 통해 통일 기반을 닦고 통일독일을 유럽의 중심부로 옮겨놓은 것처럼, 우리도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 시베리아, 몽골을 포괄하는 '북방경제권'을 형성해 태평양 경제권과 접합시키는 새 국가발전모델을 찾아야 한다. 북방경제권은 남의 자본ㆍ기술, 북의 자원ㆍ노동력을 결합한 남북 상생경제체제의 구축에서 시작된다. 9월 29일 한ㆍ러정상회담에서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한반도 종단철도(TKR)—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 천연가스 공급 등에 합의하면서, 남북간 협력의 필요를 굳이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도 세계경제의 축이 돼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남의 지식기반산업과 북의 제조업 생산라인이 연계 가동되고, 부산항ㆍ광양항이 유라시아 물류의 시발ㆍ종착점이 되는 날, 우리나라는 동북아의 중심이자 세계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미래비전은 '동북아경제공동체' 형성과 '공동의 안보'에 기여할 것이다.
"지금은 동구권이라 하지만 우리가 학생 때는 바로 그 나라들을 중부(中部) 유럽이라고 불렀지요." 1989년 한국을 방문한 빌리 브란트의 말이다.
송민순 국회의원ㆍ전 외교통상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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