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말 외환위기 발생 전. S&P 무디스 피치 등 3대 신용평가사들이 우리나라에 부여한 국가신용등급은 지금보다도 1~2단계 높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으로 국제시장에서 주가를 높인 한국경제에 대해 이들은 기꺼이 후한 점수를 줬다.
하지만 한보그룹부터 기아자동차까지 기업 연쇄도산이 이어지자, 이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S&P는 1997년10월24일부터 12월23일까지 불과 두달 만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B+로 10계단이나 끌어내렸다. 무디스는 6계단(A1→Ba1)을 낮췄고, 피치도 4개월간 무려 12등급(AA-→B-)이나 강등시켰다.
갑작스런 신용등급 추락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졸지에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발행하는 채권은 모두 쓰레기 수준인 '정크본드'가 됐고,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외화는 조달길이 완전히 막혀 버렸다.
한국경제의 이상기류는 이미 96년부터 감지됐다. 하지만 시장에 남보다 먼저 위험신호를 보내야 할 신용평가사들은 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다가, 부도 상태에 몰린 뒤에야 허겁지겁 신용등급을 무차별 강등시켰다. "건강 이상을 미리 진단하는 의사 역할을 해야 할 신용평가사들이 오히려 중환자에게 매질을 해대고 있다"는 비난여론이 들끓은 것은 당연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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