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환씨에 이은 최진실씨의 자살 사건에 대해 학생들과 솔직한 심정을 나눴다. 학생들의 충격은 매우 컸다. 한 학생은 "공범자가 된 것 같은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고, 대부분 밥맛도 없고, 잠을 설쳤거나, 공부에 집중하기 힘든 상태를 경험하고 있었다. 국민들의 충격도 비슷할 것이다.
경제와 정치가 불안하고 먹을 거리조차 안심할 수 없게 된 때, 잇따른 연예인들의 자살사건으로 정신이 멍한 충격상태,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가까운 사람의 자살과 같은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인한 정신신체적 이상 징후)를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 같다.
고통을 나눌 수 없는 우리사회
누가 최진실씨를 죽였는가? 헛소문을 퍼트린 악플러들이 죽였다고 말하기엔 정말 이 세상이 너무 야속하다. 언론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안재환씨 자살을 다루는 미디어의 태도는 무조건 까발리기나 부풀리기, 아무거나 다 알리기 식으로, 보고 듣고 읽을수록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호기심과 의혹만 더 증폭시켰다. 결국 최진실씨 또한 자살로 이르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 미디어들조차 악플러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교회는 무슨 책임이라도 느낄까? 줄지어 자살을 택했던 연예인들 대부분이 크리스찬이었다는 사실 또한 충격이다. 이제 교회는 외롭고 억울한 사람들이 자살하면 장례식이나 전담하는 그런 기관쯤으로 전락하고 만 것인가? 이럴 때 교회라도 나서서 "바로 우리가 이런 일에 대해 책임이 있소" 라고 좀 힘 있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로 알려져 있는데, 가장 안타까운 점은 "아직도 이런 문제를 여과시킬 만한 사회적 치유시스템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구나" 하는, 삶의 중심에 구멍이 뻥 뚫려있는 것 같은 무기력함을 뼈아프게 자각한다.
사태가 이쯤 됐으면, 진짜 이유가 뭔지, 이 사건을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여 국민들 중 몇 사람이라도 초청하여 함께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고 상담전문가라도 불러 충격을 해소할 수 있는 그런 자리라도 만들든지, 뭐라도 해야만 되지 않을까? PTSD와 같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기'에 대해(그게 무엇이든) 충분히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말을 하는 것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고, '그것'(그게 무엇이든)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치유방법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정신분열증 환자는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더 이상 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담자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못했거나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핵심은 고통의 내용이 아니라 그 고통에 대해 말을 할 수 있었는가, 진정으로 다른 누군가와 나누었느냐의 문제이다. 고통을 나눌 수 없는 사회, 억울함을 나눠주지 못하는 관계, 가족, 교회, 팬은 속이 텅 빈 껍데기와 같다.
그저 누군가가 그대가 되어 함께 진심으로 가슴아파 하며,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판단하거나 해석하고, 추측하거나 가르치려 하거나 설교하려 들지 않고, 잘 들어주기만 하면 그 사람은 고통이 덜어지게 되고 가슴이 확 트이며 세상 살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실 별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다.
누군가 그대가 되어 들어줘야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우리는 그토록 외로운 것이다. 그래서 우울하고 자살하게 된다.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큰소리로 "최진실씨! 당신 얼마나 억울한지 이제 알아요! 그 동안 참 힘들었죠? 억울했죠?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하면, 금방이라도 활짝 웃으며 브라운관에 다시 나타날 것만 같다. 앞으로는 상대방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할 때는, "저 사람이 저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내가 잘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좀 생각하면 안 될까?
오제은 숭실대 교수ㆍ상담심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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