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엔화대출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은행에서 10년은 문제 없이 쓸 수 있다고 해서 그 말만 믿고 대출 받은 것 뿐인데…"
엔화대출로 손실을 본 사람들로 구성된 '엔화대출자 모임'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2005년에 은행권유로 엔화대출을 받았는데 10년은커녕 3년도 안돼 한국은행에서 외환관리 한다며 만기연장 금지조치(2007년 7월)를 내렸다"면서 "만기연장 못하는 대출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누가 엔화를 빌려다 썼겠냐"고 이같이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한은이 지난 3월에 1회에 한해 만기연장을 허용해줬는데 오히려 피해가 더 커졌다"며 "추가 만기연장을 허용해주지 않으면 회사고 집이고 모두 잃게 생겼다"고 전했다.
최근 일본이 금융위기의 안전지대라는 인식으로 엔화가 초강세를 띠면서 엔화를 대출한 중소기업과 병원 등의 피해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8일 원ㆍ엔 환율은 1,400원을 눈 앞에 둔 상황. 800원대였던 작년 말에 비해면 2배 가까이 뛴 상태다.
기업,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5개 시중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9월말 현재 9,232억엔.이 와중에 전달보다 100억엔 가까이 늘었다. 최근 7개월간 증가규모는 600억엔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돼 손실도 그만큼 커지게 됐다.
엔화대출은 대출금리가 연 3.5% 수준으로 원화대출의 절반 정도밖에 안돼 인기가 높았다. 특히 작년 이후 감소하던 엔화대출은 3월 중순 100엔당 1,070원대였던 환율이 8월초 920원대까지 하락하면서 다시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이후 원화가치가 폭락하면서, 엔화 대출자들이 막대한 환차손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지난달 초 엔화대출로 50억원을 빌렸다면,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갚아야 할 원금이 14억원이나 늘어나는 셈이다.
피해를 입은 계층도 다양하다. 현재 전국 100여명이 가입한 엔화대출자 모임은 중소기업 사장이 대부분이지만, 의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와 유학생들도 포함돼 있다. 엔화대출자 모임은 10일 한국은행을 방문해 이성태 총재와 면담을 요구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도 중소기업 엔화대출 및 통화옵션상품과 관련한 거래현황을 확인하는 한편 피해대책을 논의 중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등의 엔화 관련 리스크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있다"며 "만일 리스크가 크다면 본점 차원에서 통합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영업점 차원에서 리스크 파악을 하고 있다"며 "일단 원ㆍ엔 환율이 많이 올라 기업들이 원화대출 전환보다는 엔화대출 연장을 원하고 있어 한은 지침대로 1회에 한해 대출연장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금융감독원 측은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주무부서 관계자는 "달러 등 다른 외화에 비해 규모가 작아 위험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시중은행별 대출잔액 등은 아직 조사하지 않아 데이터는 없다"고 말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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