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창을 여니 귀뚜라미 소리가 어느새 끝물이다. 전지가 다돼가는 녹음기처럼 소리가 가늘고, 길게 가지 못한다. 짧은 것은 '귀뚤귀뚤귀' 5음절, 길어야 '귀뚤귀뚤귀뚤귀뚤귀' 9음절이 고작이다. 안 그래도 쓸쓸한 가을 정서를 자극하는 녀석이 울음소리마저 그 모양이니 애꿎게 잠만 설쳤다. '나이 오십/잠이 맑은 밤이 길어진다/머리맡에 울던 귀뚜라미도/자취를 감추고/네 방구석이 막막하다/이런 밤에/인생은/ 날무처럼 밑둥에 바람이 들고/무릎이 춥다/지천명의/뜰에는 백국(白菊)/서릿발이 향기롭다'(박목월 <백국> ). 백국>
■옛사람들도 귀뚜라미 소리에 서럽고,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실으려 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최성대(崔成大)는 <실솔(蟋蟀)> 이란 한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밝은 달빛 풀섶 이슬에 걸려 반짝이는데(皎月草間懸露光)/옥구슬 단장하고 무슨 말이 그리 많아(纖珠碎佩語何長)/가을바람 소슬 불어 시름만 더하거늘(秋風吹起深深思)/뾰족하게 벼린 칼로 애간장을 찌르듯(似淬尖鋩割盡腸)'. 박효관의 시조도 절창이다. '님 그린 상사몽(相思夢)이 실솔의 넋이 되어/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실솔(蟋蟀)>
■귀뚜라미 소리는 세상과 소통하려는 호소가 되기도 한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나희덕 <귀뚜라미> 일부). 이 시를 안치환의 노래로 들으면 비통한 절규가 된다. <선조실록> 에서는 선조가 병을 이유로 물러나려는 데 반대한 중신들이 '26일 동안 대궐 뜰에 서서 호소한 말이 가을벌레나 귀뚜라미 소리 같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선조실록> 귀뚜라미>
■귀뚜라미가 늘 시름과 벗하는 것은 아니다. 동화 <피노키오> 에는 지혜로운 조언자로 나온다. <정조실록> 에서 정조는 "대궐 안 풀에서 우는 귀뚜라미의 맑은 소리를 들으니 더욱 더 높은 풍모를 그리게 된다"며 조림(曺霖)의 출사를 간곡히 청한다. 귀뚜라미 소리는 선비의 맑고 높은 뜻을 일깨운다. 짝 지을 암컷을 부르거나 영역을 알리기 위한 울음이 듣는 이의 심사에 따라 달리 들릴 뿐이다. 가을이라고 누구나 시인이 될 수야 없지만, 시 읽기에 좋은 계절임은 분명하다. 정조실록> 피노키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