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등하는 환율이 산업계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원료 수입 비중이 높아 고환율의 직격탄을 맞은 유통 및 철강업계는 물론, 그 동안 환율 상승의 수혜주로 꼽히던 전자ㆍ자동차ㆍ게임 업계 등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고전하고 있다.
수출 많은 전자업계 소비위축 우려
수출이 많은 전자와 자동차는 대표적인 환율 수혜 업종이다. 환율이 10원 오를 경우 영업이익이 전자업계는 700억원, 자동차업계는 1,200억원 늘어난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요즘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치솟는 환율이 마냥 반갑지 만은 않다. 반도체, LCD, 휴대폰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이 늘어나 당장은 즐거울 수 있지만, 외환시장의 불안은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제품 판매에 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환율 상승은 일시적으로 좋아 보일 수 있으나, 계속 오르면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회사 경영 차원에서 환율 급ㆍ등락은 상당한 위험 요소"라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도 "급격한 환율 변동은 소비심리에 악영향을 미쳐 환차익을 상쇄시킨다"고 설명했다.
특히 핵심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휴대폰과 LCD TV 등은 고환율이 영업에 치명적이다. 휴대폰은 카메라 모듈과 통신칩을 미국 퀄컴 등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수입하고 있으며, LCD TV는 일본 아사히유리 등에서 원판 유리를 들여와 가공한다. 이에 따라 전자업체 구매팀은 이미 원ㆍ달러 및 원ㆍ엔 급등에 따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수출 대금을 달러로 비축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설비 유지, 원자재, 인건비 지급 등을 위해 하루 1억달러 정도를 환전해서 사용해야 한다"며 "환율 상승에 대비해 무조건 외화를 쌓아둘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철강업계는 환율 상승으로 원자재 수입 부담이 늘어나면서 먹구름이 끼었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환전하지 않고 원자재 수입에 쓰는 '자연 헤징' 방법을 쓰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슬래브를 수입해 열연강판 공장을 가동하는데, 환율 급등으로 막대한 환차손을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원료 수입 비중 높은 식품ㆍ유통업계 비상
식품 및 유통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각종 식품용 재료인 곡물 수입가가 뛰기 때문이다. 연간 50만톤의 옥수수를 수입하는 ㈜대상의 경우 환율이 100원 오르면 17억5,000만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CJ도 원ㆍ달러 환율이 930원대에서 1,300원대로 치솟으면서 밀가루, 설탕 등 식재료 수입가격이 뛰어 500억원 이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백화점 및 명품수입업체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환율 폭등으로 가을 신상품 가격을 7~15% 올렸는데,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고객 이탈마저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이 직수입 판매하는 미국 브랜드 '쥬시꾸틔르' 담당자는 "이달 말 입고되는 겨울상품 대금을 결제해야 하는 데 환율 폭등으로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걱정했다.
명품ㆍ수입차 업계 환차손 비명
명품 브랜드의 경우 인지도 탓에 환율 상승폭을 소비자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기도 어렵다. 롯데백화점은 "업계 관계자들과 고환율 대책회의를 계속 갖고 있지만 현재로선 마케팅 비용을 줄여 가격인상을 최소화하는 것 외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태"라고 답답해 했다.
수입차 업체들은 환율 상승분만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고객 이탈을 우려해 인상폭을 고민하고 있다. 환차손을 견디지 못해 소폭 인상에 나선 업체도 있다. 혼다코리아는 '시빅' '어코드' '레전드' 등의 국내 가격을 50만~80만원 인상했고, 프랑스 '푸조'를 판매하는 한불모터스도 3~5% 올렸다. 독일차 업체들은 유로화 강세에 따른 환차손을 당분간 본사가 떠안기로 했지만, 2009년형 신차에 대해서는 환율 인상폭 반영을 검토 중이다.
그나마 환율 상승 덕에 해외 수출이 늘어난 게임업계가 모처럼 국내 시장의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엔씨소프트는 전체 매출 중 해외 판매 비중이 42%에 달하며, 예당온라인은 댄스 게임 '오디션'을 중국에 수출해 앞으로 2년간 최소 3,500만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기대하고 있다. 한빛소프트 역시 다중역할분담게임(MMORPG) '그라나도에스파다'가 중국 일본 등 14개국에 수출되면서 월 20억원의 로열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선 환율 급락 못지않게 환율 상승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 급등도 수출ㆍ입 업체 모두에 골고루 영향을 미친다"며 "대부분의 기업들이 환율이 오르면 무조건 보유 비중을 늘리는 식의 단순 대응을 하고 있으나 급락하면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정 외환 보유 기준을 정하는 등 환율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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