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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의 길 위의 이야기] 우스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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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의 길 위의 이야기] 우스운 날

입력
2008.10.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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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글’이라는 말 속에, 이미 한글의 애매한 신세와 가시밭길 노정이 예견되어 있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을 보라! 모두 ‘말 어(語)’가 붙어 있다. 통상적으로 그 ‘말 어’는 말과 글자를 동시에 뜻한다. 영어는 영어말과 영어글자를 동시에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한글은 불행히도 글자만 가리키고 있다.

한국어가 됐어야 했는데, 한글로 태어난 것이다. 한글이란 말에는 말 따로 글자 따로 해도 상관없다는 방관이 내포되어 있다. 강제로 배운 일본말은 끈덕지게 오래갔다. 하지만 글자만은 우리말로 쓰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다들 말은 ‘와리바시’ ‘벤또’라고 했지만, 글자는 ‘나무젓가락’ ‘도시락’으로 썼던 것이다. 영어말이 득세한 이후에도 노력은 계속되었다. 말로는 ‘아이 러브 유’라고 했지만, 글자는 ‘사랑해’라고 썼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말 따로 글 따로의 모순을 포기할 작정인가 보다. 거리의 간판들, 외국 영화와 번역서적 제목들, 상표들, 제품 이름들, 거의 모든 것들이 영어말 그대로 적혀 있다. 우리말로 바꿔서 적으면 무식한 촌놈 소리를 듣는다. 우리말을 빠른 속도로 망각해가며, 영어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는 처지로 전락한 저 글자, 저게 바로 한글의 현재 모습이다.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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