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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김구와 책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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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김구와 책 두 권

입력
2008.10.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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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뛰어난 민족 지도자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고 일본 요인들에 대한 무력 공격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한국독립당을 만들고 윤봉길, 이봉창 의사들의 거사를 추진하였다. 그는 이 거사들 뒤 일본 경찰에 쫓기어 도피 생활을 하게 된다. 그 도피 생활 이야기를 소설로 엮은 것이 중국인 여자 소설가가 쓴 <선월> 이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보면 김구는 일본 경찰에 쫓기어 상하이 남쪽의 기흥이라는 호숫가 도시에 몸을 숨기게 된다. 여기서 주아이빠오라는 처녀 뱃사공을 만나 김구가 뒤에 술회한 대로 "부부와 비슷한"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소설 <선월> 과 <백범일지> 의 감동

이 소설은 여자 소설가의 감성이 잘 드러나는 애달픈, 특히 여자 쪽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다. 김구는 해방 뒤 한때의 연인을 찾아 사람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영영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를 두고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축첩을 하였다느니 어려울 때 도와준 여인을 나 몰라라 버렸다느니 하면서 욕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민족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지도자가 그 급박한 상황에서 사사로운 정리를 다 챙기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선월> 은 정말 한번 읽어봄 직한 소설이다.

그런데 김구가 남긴 위대한 책이 있다. 나는 그가 쓴 <백범일지> 를 읽고 한국인의 현대 기록 문화로서 이만한 것이 없다고 혼자 선언하였다. <백범일지> 는 다른 대부분의 책들처럼 머리나 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쓴, 온몸을 던져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피의 작품이다.

그의 민족애, 조국애, 그리고 어머니와 부인 자식들을 향한 가족애, 정열과 사랑, 슬픔과 각오, 민족의 장래에 대한 불타는 염원이 글자 한 자 한 자에 그의 살과 피처럼 녹아있다. 그런 체험을 직접 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쓸 수 없는, 그야말로 상투어로 '불후의 명작'이다. 이런 작품이 현대 한국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우리 겨레의 문화 수준을 위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솔직히 나는 이러저러한 우리 고전이나 명저라는 것을 보고서 별다른 감흥을 느낀 적이 없다. 우리 문화유산이, 적어도 사상의 면에서 빈약함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이는 함석헌 선생이 누누이 한탄한 바와 같다.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꺼져갈 때에도 앞날을 밝혀줄 어떤 그럴 듯한 사상이나 철학이나 대안도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좋은 증거이다.

중국 사람 황준헌(黃遵憲)이 <조선책략> 을 써서 조선의 앞길에 훈수를 두었는데, 우리는 그런 책조차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백범일지> 이것 하나가 있음으로써 우리 빈약한 정신문화의 빈 자리가 채워진다. 마치 안중근이 있음으로써 망국에도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이 많지는 않고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이 바로 조선 겨레가 망해버린 까닭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대통령 백범'은 잘 못했겠지만

김구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정치와 행정을 잘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는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인 적이 없다. 일본 경찰에 쫓겨 다니던 망명 지도자로서 그럴 만한 경험을 쌓을 기회도 없었다. 해방 직후의 난국에서 별다른 정치력이나 지도력이나 혜안을 보이지도 못했다. 그래서, 아마 그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나라를 썩 효율적으로 이끌지는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점은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도대체 우리 겨레가 정치 경험을 쌓지 못하도록 철저히 탄압하지 않았던가. 투사와 행정가는 다르다. 그는 행정가가 아니라 투사였다. 자신을 희생하고 독립운동에 매진한 투철한 민족투사였다. 그런 그의 삶이 그로 하여금 아직도 우리에게 가장 존경 받는 인물로 남아있게 만들었다.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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