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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大豊이면 뭐해… 값이 작년 절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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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大豊이면 뭐해… 값이 작년 절반인데"

입력
2008.10.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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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익어서 탈이지…."

8일 오후 충북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산 아래에 자리잡은 과수원. 탱글탱글하게 영근 사과를 따던 주인 김봉수(53)씨는 작황을 묻는 질문에 버럭 화부터 냈다.

"시세는 곤두박질치는데 출하를 안 할 수도 없고…, 올해는 자재값도 엄청 올랐는데 생산비는커녕 인건비도 못 건지게 됐어." 그는 "출하할수록 손해지만 사과 밭을 버릴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수확한다"고 했다.

마을 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었다. "풍년 든 해에 가격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지. 누가 그걸 모르나. 하지만 예년에는 보름 정도만 지나면 상황이 나아지곤 했는데, 올해는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앞이 캄캄해."

사과, 배 등 과일 값이 폭락하면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대풍작의 기쁨도 잠시, 농민들은 끝 모를 가격 폭락세에 속이 까맣게 타고 있다.

충북 원예농협에 따르면 현재 수확이 한창인 중생종(홍로, 영광 등) 사과 15㎏짜리 특품 한 상자의 평균 경매가는 1만8,000원으로 지난해 이맘 때 2만8,000원 선보다 1만원이나 하락했다.

사과 값은 추석 전 3만원까지 올랐다가 추석 직후 2만원대로 떨어지더니 9월말부터는 1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약 한달 사이 40% 가까이 폭락했지만 아직도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가격 폭락으로 상당수 농가들이 중생종 출하 시기를 늦추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사과 생산량의 60% 이상을 점하고 있는 만생종 후지(富士) 수확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농 조강천(55)씨는 "이달 말부터 후지가 본격적으로 수확돼 출하를 늦췄던 물량과 겹치는 날이면 큰 일"이라고 걱정했다. 충북 원협 이상복(41) 판매과장은 "일부 농가들이 눈치를 보며 출하를 미루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자칫하면 올해 사과 시장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배는 더 심각하다. 대전 과일도매시장의 신고배 한 상자(7.5㎏) 값은 1만 5,000원 선으로 추석 전인 9월초 3만 2,000원에 비해 반값 아래로 뚝 떨어졌다. 산지 가격은 추석 전보다 60% 가까이 급락했다. 배 최대 산지인 전남 나주에서는 생산 원가도 건지지 못하게 된 대다수 농가들이 투매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세레단 등 만생종 포도 출하를 앞둔 충북 영동군 농가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조생종 출하 시기인 여름철에 가격 폭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과일 폭락세가 올해 유독 심한 이유는 추석이 빨라 명절 대목을 놓친 데다 유례없는 대풍작으로 공급 물량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많고 태풍 피해도 비켜간 덕에 올해 과일은 '봉지가 터질 지경'이라 할 정도로 작황이 좋다.

사과, 배, 단감 등 거의 모든 과일 생산량이 예년 평균에 비해 15%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생산량이 크게 증가한 가운데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부진이 겹치면서 연쇄적인 가격 하락을 부채질했다.

정부와 지자체, 농협 등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전국 47개 배 주산지 농협 조합장들은 7일 대전에서 긴급 모임을 갖고 배 수매 물량을 늘려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고 소비촉진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배 기증 운동 등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정부는 배 값 안정을 위해 농협과 함께 배 1만톤을 수매해 폐기할 방침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수매 물량 확대와 수매가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나주시는 신세계이마트 전국 매장에서 나주 배 특판을 한데 이어 금호타이어, 기아자동차, 삼호조선소 등 전남 지역 주요 기업들을 상대로 판촉 활동을 벌이고 있다. 충북 원협 130여명의 직원들은 사과 판매처를 확보하기 위해 조를 짜서 백방으로 뛰고 있다.

충북 원협 박철선 조합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은 과일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수출과 가공품 개발을 늘리고 생산 면적을 축소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k.co.kr천안=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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