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우리는 우리의 글자인 한글을 기념하는 한글날을 맞이한다. 한글날은 훈민정음 창제라는 국가적인 경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법으로 정해 온 국민이 기념하는 날이다. 그래서 10월 9일을 전후하여 우리 글과 우리 말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 글이 훌륭하고 우리 말이 정겹다는 말과 함께 이들을 사랑하고 더욱 발전시키자는 다짐도 빠지지 않는다.
한글날이면 항상 다짐하지만
그런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면 우리 글과 우리 말에 대한 사랑과 발전에 대한 다짐은 또다시 공염불이 되고 만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날에 이런 말을 수백 번 들어 왔건만, 실제 언어생활은 이 날의 다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사람들이 왜 공인되지 않은 글이나 말을 쓰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 우리의 글과 말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이유를 밝혀서 올바른 언어생활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의식적으로 그런 글이나 말을 쓰게 되었다면 언어 행위가 아닌 다른 행위에서도 마찬가지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그런 글이나 말을 쓰게 되었다면 그 행위가 상대의 처지를 고려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처지만을 생각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은 상대를 전제해야 하므로 원활한 의사소통은 상호 협동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표현이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처지에 따라서 판가름 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상대의 처지를 일일이 헤아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글과 말을 특별히 설정하여 쓰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글과 말은 한글과 표준어이다. 한글은 맞춤법이라는 운용의 규범에 따라 쓰게 되는 우리의 유일한 글이고, 표준어는 서로 다른 방언 화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공용어의 자격을 가진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표준어에 한자어나 외래어가 들어 있다고 해서 모든 한자어나 외래어가 표준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고유어 방언 '무수'가 '무'의 비표준어이듯이 한자어 '면(勉)하다'는 '근면(勤勉)하다'의 비표준어이고, 외래어 '래디오'는 '라디오'의 비표준어이다.
'약속' 깨는 것은 상대 무시행위
언어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인정한 일종의 약속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개인의 기호에 따라 마구 글을 쓰고 말을 할 수는 없다. 만약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글과 말을 섞어 쓴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행위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공인되지 않은 글이나 말을 의식적으로 섞어 쓰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상대를 무시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같은 방언 화자들 사이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말을 할 때 공통어인 표준어를 사용해야 하며, 글을 쓸 때는 맞춤법에 따라야 할 것이다.
최호철 고려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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