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글날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글날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할 테니까, 저는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문장 습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문장은 어법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고, 젊은이들이 그걸 모범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급하게 바로잡아야 할 것은 외국어를 괄호 안에 넣지 않고 그냥 쓰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잦은 주어(主語)의 반복, 태평양을 건너가는 긴 문장과 단락입니다. 외국어를 직접 끼워 넣는 걸 먼저 꼽은 것은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이 우리말의'나'를 알았다고 "나 케임 프롬 코리아(나 came from Korea)"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우스울까요.
주어를 반복하지 말라는 건 이미 초등학교 때 배웠습니다. '나는 일곱시에 일어났다'라고 쓰면, 담임 선생님께서 밑줄을 그어 주셨으니까요. 화자(話者) 중심의 유럽어에서는 서술어는 생략해도 주어는 생략하지 않지만, 청자(聽者) 중심의 국어에서는 주어를 반복하면 군더더기처럼 들릴 뿐만 아니라 아직 미분화된 어린애 말 같아서 그러신 겁니다. 그런데도 국문학을 전공한 교수님들까지 주어를 빼지 못하는 것은, '오늘은 비가 온다'라는 영작문을 할 때 '잇(it)'이라는 가주어(假主語)를 넣도록 훈련을 받은 게 몸에 배었기 때문입니다.
서양 문장처럼 길게 쓰는 것은 우리말의 문법 구조를 몰라서입니다. 유럽어는 주어 다음에 서술어가 오고, 모든 품사들은 성(性), 수(數), 시제(時制), 격(格)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첫머리 두 단어만 읽어도 전체 뜻이 드러나고, 나머지 단어들은 보충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길게 써도 성, 수, 시제, 격을 따져 누구의 행위를 지칭하는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의 서술어는 그 문장 맨 끝에 옵니다. 그래서 다 읽지 않으면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 수, 격도 구분하지 않습니다. '㉮→㉯→㉰→㉱'로 이어지는 문장을 읽을 경우, 머리 속에서 ㉮와 ㉯, ㉮와 ㉰같이 동원한 어휘들의 관계와 ㉮㉯와 ㉰, ㉮㉰와 ㉱같은 구절들의 관계를 따져가며 읽는데,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에 새로운 정보를 누가하면 얼른 읽히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원서보다 번역서가 더 어려운 것도 우리 어법을 외면하고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식인들이 이런 문장을 쓰는 데는 적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현대 학문과 문화는 저들로부터 받아들인 것이고, 저들의 언어보다 관념어가 빈약하고 감각어가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아'라는 말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들에게는 '즉자(卽自,en-soi)', '대자(對自,pour-soi)', '현실적 자아(ego)', '본능적 자아(id)', '도덕적 자아(super-ego)'를 비롯하여 아주 많은 단어들이 있는데, 우리는 아직 이런 단어를 마련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 드리려는 것은 이런 언어 차이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서구인들을 흉내내야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의식구조입니다. 지식인들이 그렇게 쓰면 어린 학생들이 자기 이름마저 저들 식으로 바꾸고, 마침내 또 다른 IMF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지배를 받으니까요.
이를 지적하는 저마저 이제까지 저들을 흉내낸 게 몸에 배어 바르게 썼는지 모르겠네요. 잘못 쓴 곳이 있으면 봐주세용(요), 이!
尹石山 시인ㆍ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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