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직의 동명 신소설을 바탕으로 1908년 11월 15일 원각사에서 처음 막을 올린 연극 '은세계'. 그때까지의 영웅담이 아닌, 현실성 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신연극의 효시로 받아들여지는 이 작품에 2008년 한국 연극계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정동극장에서 최근 개막한 '은세계'는 한국연극 100주년이라는 의미에 방점을 찍는 작품이다.
2008년 새로운 '은세계'(배삼식 작, 손진책 연출)의 내용은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한 축은 1908년 '은세계'를 무대에 올리는 광대들의 모습이고, 다른 한 축은 그것을 쓴 이인직의 삶의 궤적이다.
이인직(정태화)과 부인(김성녀)의 만남이 환상적 상황으로 설정된 가운데 김창환 강용환 송만갑 이동백 허금파 등 당시 '은세계'를 준비하고 공연했던 광대들의 이야기가 극중극 형식으로 녹아있다.
연출자와 극작가가 밝혔듯, 2008년 '은세계'는 대본을 남겼다는 이유만으로 작가 이인직과 그의 작품에 '최초의 신연극'이라는 과도한 명예가 주어지는 상황을 거부하고 공연을 직접 만들어간 광대들의 삶에 더 주목한다.
특히 1908년 '은세계' 공연 당시 선보였던 창극 형태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왕기석 한승석 김성예 등 우리시대의 명창들이 김종엽 김성녀 등 극단 미추의 명배우들과 더불어 한 무대에 선 점이 극의 흥미를 더했다.
걸쭉한 사투리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는 명창들의 호연 덕분에 연극은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창극의 현대화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쳐봐도 좋을 만큼 객석에 새로운 재미까지 선사했다.
대사에도 곱씹을 대목이 많았다. "얼굴 반반하다고 주인공 시키고, 손님이 꽉꽉 들어차도 돈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광대들의 처지"를 한탄하게 되는 것은 100년이 흐른 지금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은세계'는 100년 전 광대들의 이야기이자, 바로 이 시대 예술가들의 목소리다. 연극 전공자가 아닌 일반 관객에게는 100년 전 신연극이 생소한 소재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사실이냐 허구냐를 떠나 광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인다. 19일까지. (02)751-1500
김소연 기자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