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국가신뢰도를 보장하기에 충분하므로 더 이상 늘리지 않을 것이다."
2005년 5월 중순 박 승 한국은행 총재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시장에선 원화 강세를 막기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회견 직후 서울 외환시장은 개장과 동시에 원-달러 환율 1,000원 선이 붕괴되며 900원대로 진입했다. 수출업체들은 가격경쟁력 추락이 불가피하다며 비명을 질렀다.
참여정부는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투자 증가로 원화강세가 이어지자 '달러 퍼내기'에 안간힘을 썼다. 당시 박 승 총재가 원고(高)를 용인하는 발언을 했듯이 참여정부는 외환자유화 정책을 잇따라 내놓아 기업과 개인이 해외에 나가 달러를 쓰라고 재촉했다. 해외펀드에 비과세 혜택을 줘 해외투자 열풍이 전국을 달궜다. 해외 부동산 취득한도도 대폭 늘렸다.
참여정부 '달러 퍼내기' 실책
참여정부의 달러 밀어내기에 힘입어 2005년 2,200만 달러에 그쳤던 해외 부동산 투자는 2007년 11억7,400만달러로 폭증했다. 문제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불길이 지난해 7월부터 전세계로 번진 상황에서도 달러 밀어내기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도 9월 해외 송금한도를 5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늘리는 등 2단계 외환자유화 일정을 내년 말에서 내년 2월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우리 경제가 극심한 외화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으로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참여정부의 달러 퍼내기는 미국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명박 정부에선 달러 확보에 올인하는 정책으로 180도 바뀌었다. 은행들에게 해외자산 매각 등 자구노력을 촉구하고, 2단계 외환자유화 일정도 연기하는 등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지만 외환시장 불안은 증폭되고 있다.
우리경제를 짓누르는 증시폭락, 환율급등, 금리상승은 11년 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 외환보유액 2,400억 달러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금융회사들의 재무건전성도 개선됐지만 외환시장은 카오스에 빠져 있다. 찰스 킨들버거와 로버트 알리버는 <광기 패닉 붕괴-금융위기의 역사> 에서 "패닉은 스스로를 먹고 자라는 양상으로 번져간다"고 강조했다. 광기>
미국 금융위기는 유럽 일본 아시아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97년 위기가 아시아에 국한됐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대형 허리케인이 글로벌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우리 외환보유액이 세계 6위라고 자랑하지만, 외환시장이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면 '흑자부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B 정부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1차 외환위기 때처럼 3개의 가혹한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첫번째는 외화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 시장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 외국인의 '셀 코리아'로 환율 폭등세가 이어지면 금융시스템 보호를 위해 환 투기 세력과 '아마겟돈 전쟁'도 불사하는 결연함을 보여줘야 한다.
두 번째는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미칠 파장을 줄여야 한다. 미국 등 주력시장의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 수출급감 속 내수침체로 사회양극화가 심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중산층 몰락과 극빈층 증가, 중소기업의 부도 도미노가 우려된다. 확장적 재정정책과 신용보증기관을 통한 중소기업 지원 강화 등 'MB판 뉴딜정책' 카드를 꺼낼 필요가 있다.
MB판 뉴딜정책도 필요
마지막 터널은 경제를 선 순환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다.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늘려 경상수지를 흑자로 반전시키는데 힘쓰고, 적절한 유동성 공급으로 생산과 출하, 제조업 가동률을 높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3개의 터널을 지나 경제를 안정시킬지 불투명하다. 주변여건이 워낙 열악한 상황이라 터널을 벗어나는 데는 행운도 필요하지만 관리의 집중력이 절실하다. 경제팀이 지금처럼 불신을 받는다면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구원투수가 등판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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