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면 식상하지만 대선 때는 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하에서 권력 금단증상을 느꼈을 과거 집권세력들에게는 그만큼 가슴에 와 닿는 표현도 없었을 듯 싶다. 이명박 대통령의 승리로 그들은 환호했고 새'권력자'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려줄 수 있을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은 이 대통령 취임 이후 7개월은 물론이고 4년5개월이나 남은 임기 모두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7개월여만에 이렇게 된데 대해선 그 이유가 어느 한가지로 귀결되기는 어렵다. 여러 원인 가운데 우선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이 대통령 정부가 '완전 초보'처럼 헤매고 있다는 점이다.'고소영, 강부자' 논란을 불러온 인사,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과 이후 촛불시위 과정에서의 미숙한 대처, 어설픈 종부세 완화 추진, 추경예산안 처리때의 어이없는 실수 등. 그 어디에서도 국정운영의 축적된 노하우가 발휘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불과 10년만에 정권을 되찾았는데도 말이다.
이는 과거 집권 경험에서는 배울 것이 없거나 있더라도 배우거나 연구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자세로는 애당초 잃어버린 것이 없거나, 또는 잃어버릴 것도 없던 세력이 국민을 호도했다고 해도 항변이 쉽지 않다. 현 정부는 전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무리한 인사를 밀어붙이는 모습은 노무현식 '코드 인사'와 많이 닮아 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오른쪽의 노무현'이 될 것이라는 농반진반의 예견이 지난 대선때 나돌았었다. 그것이 적중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안타까움은 더 커진다. 교과서 수정 논란에서 보듯 전 정부가 가던 방향에서 유턴해 무조건 반대쪽으로 매진한다고 '창조적 실용주의'가 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좌편향이 비난받아 마땅했다면 우편향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이른바 범여권이 위기타개에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2일 여야 원내지도부와의 만찬에서 현재를 '위기 시대'로 규정했지만 한나라당내 제 계파들이 실제로 이렇게 느끼고 행동하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해도 차기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 주변에 모여만 있으면 실정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믿는 이들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박 전 대표측에서는 "아직 때가 아니다"는 얘기를 한다는데 이 또한 알다가도 모를 소리다. 이 대통령과 확연히 갈라서 독자 대권행보를 하기에는 때가 이르다는 뜻인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협력해 여권이 총력을 다하기에는 작금의 위기가 성에 차지 않는 것인지, 좀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여권의 난맥상에 더해 이 대통령 본인의 정치적 감각이나 판단력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여의도식 정치에 민감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국민의 뜻을 읽는 감각이 떨어져 정책상의 패착이나 실기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지도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보수논객인 소설가 복거일씨는 최근 이 대통령의 문제는'탐욕'이라며"앞으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위대한 대통령으로 업적을 남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일 수도 있으나 아직은 그렇게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되면 국민들이 너무 팍팍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태성 피플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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