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詩로 여는 아침] 바짝 붙어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詩로 여는 아침] 바짝 붙어서다

입력
2008.10.08 00:11
0 0

김사인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빈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 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저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 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서 있을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방 한 구석 힘주어 꼭 짜 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승용차의 눈에 할머니는 폐지에 지나지 않는다. 내다버린 종이를 줍고 사니 그 삶도 구깃구깃한 종이와 같다. 버려진 종이를 함부로 짓밟고 다니는 게 무슨 큰 죄가 되랴. 좁은 골목길 운행에 방해가 되는 그 몸짓은 기껏해야 징그러운 거미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가오리를 연상케 할 뿐이다.

승용차와 달리 하루 종일 할머니를 따라다니는 작은 밀차는 승용차가 보지 못한 할머니의 '발꿈치'를 본다. 찢어진 고무신 뒷축처럼 금이 가 있을 발꿈치로부터 목이 메이는 한 칸 방이 나온다. 무슨 남은 힘이 있어 늦은 밤 온몸을 쥐어짜듯 짜 놓은 걸레가 있는 방. 밀차가 어린 염소처럼 울며 굴러가는 골목길을 생각한다. 밀차가 유일한 혈육이라니!

손택수ㆍ시인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