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순수성에 집착했던 한국의 문화의식이 방향을 틀어 '잡종성'을 중시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었습니다. 대중의 문화욕구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다는 시대사조를 읽어 결단을 내린 데서 지도자의 의지가 빛났지요."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의 새로운 관계를 다짐한 '신(新) 한일관계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오늘로 1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고려대 일본연구센터(소장 최관)가 마련한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오구라 기조(小倉紀藏ㆍ49) 교토(京都)대 교수는 양국간의 수평적 문화교류를 10년 동안의 으뜸 성과로 꼽았다. "일본과의 관계라면 으레 수직적 우열을 따지던 한국에 수평적 교류가 정착한 것이야말로 '탈(脫) 식민지화' 아닐까요."
그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딴 한국사상ㆍ문화 전문가이자, 2002~2005년 'NHK 한국어강좌'를 이끈 '한류 전도사'이기도 하다. 한류 열기가 식은 데 대한 아쉬움이 남다르다. "무엇보다 한류 붐이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대중문화라는 입구를 통해 넓고 깊은 세계로 들어갔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한국소설이 안 팔리고, 한국사상이나 철학에 대한 관심도 낮습니다. 한국문화를 소개한 일본인들의 자질과 역량이 부족했지요."
한국 쪽 책임은 없을까. 그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편성 있는 작품이 드물다"고 짚었다. "한때 일본에서도 야쿠자 영화 등 역동적인 영화를 즐기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용하고 얌전한 영화가 대세지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생각이 다른 사람과 싸워서라도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지만, 일본에는 조용히 살아가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무성합니다. 드라마 <겨울연가> 의 인기도 그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지요." 겨울연가>
문화를 정치나 역사인식과 연결시키려는 의식, 한류를 국익이나 문화우위 관점에서 보려는 인식이 은근한 반발을 불렀다고도 했다. "한국은 아직도 문화와 권력이 너무 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양국 문화교류의 장래는 낙관했다. "최근 한국의 '탈(脫) 일본'이 자주 거론됩니다. 일본에 대한 관심 자체가 묽어지고, 한국의 관심이 중국으로 쏠리는 현상이지요. 이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의 반일 감정이 더 이상 문화교류의 걸림돌이 될 수 없으리란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일본을 단순한 외국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늘수록 수평적 교류는 확고해집니다."
다만 그 단계에서는 다시 고유성이 소중해지는데 "한국문화의 진수나 '역사개성'이 핏줄에 흐르고 있을 30대 문화인들의 창의력과 재능이 한국문화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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