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죽음마저도 아무렇게나 소비해 버린다는 진단이 당연하게 들리는 시대를 사노라니, 죽음을 말한다는 게 또 하나의 소비일 것 같아 무색하다. 나 역시 자살충동을 생애 동안 몇 번은 가졌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내가 아는 사람 거의 모두가 자살충동을 느꼈거나 심지어는 시도를 했었다.
그러니까 자살충동은 사람의 숙명인 듯싶다. 생판 모르는 이가 죽는 것도 살 떨리는 일인데, 내가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겁나는 끔찍한 일이다. 요새 죽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후배가 있다. '제발 너를 아는 모든 이들을 위해 부디 살아다오. 네가 거시기하면 우리가 얼마나 힘들겠냐? 우리가 너를 안 이상, 네 인생은 너만의 것은 아니잖아?' 나를 위해 죽지 말아달라는 이기적인 부탁이겠는데, 그만큼 나는 죽음이 두렵다.
비루한 삶을 인내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순간적인 충동을 이겨냈다는, 이겨내고 있다는 것일 테다. 정말이지 그 순간이 무서운 것 같다. 그 순간만 지나면 어찌 되었든 다시 버틸 힘이, 희망이라는 것이 다시금 샘솟아, 훌훌 털어내고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어렵더라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숙명 아닌가.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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