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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 여성 캐릭터 '미쓰 홍당무' 공효진 "대책없이 망가진 모습, 관객이 좋다면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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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 여성 캐릭터 '미쓰 홍당무' 공효진 "대책없이 망가진 모습, 관객이 좋다면 위안"

입력
2008.10.0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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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기상천외의 캐릭터다. 결혼 대상 1순위라는 여교사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 장만을 위해 교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몸에 좋다면 뭇 여성들이 혐오하는 닭발도 전투 하듯 섭취한다.

욕구불만이 폭발 직전에 달하면 애먼 땅에 삽질로 화풀이를 한다. 조실부모한 '전따'(전교 차원의 왕따)라서일까, 남자들이 '그냥' 보낸 문자와 우연한 살결의 스침과 의례적인 미소에도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일명 '삽질의 여왕', 그녀 이름 양미숙.

지독하게 엉뚱하고 쓸쓸한 한 여성의 좌충우돌 연애소동을 그린 영화 '미쓰 홍당무'의 주인공 양미숙은 관객들의 눈가 주름을 더 깊어지게 할 포복절도의 캐릭터. 하지만 미모가 필수 경쟁력일 수밖에 없는 젊은 여배우가 맡으면 두고두고 뒷말이 따를 만한 치명적인 역할이다. 화장기 전무한 '쌩얼'을 넘어 갈라진 입술과 까칠한 피부로 상영시간 101분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공효진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못난이로 망가졌는데도 영화가 잘 안 되면 어떻게 될까 겁이 나서 하지 말아야 이유를 먼저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양미숙이 자꾸 '나 좀 제발 어떻게 해줘' 하며 제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너무 동정이 가는 캐릭터라서 매정하게 떨칠 수가 없었어요. 그래, (시나리오) 활자로 본 내게 여운이 남는 역이면 관객들에겐 더 큰 여운이 남겠지. 그래서 마음을 먹었죠."

공효진은 자신을 현실주의자라고 했다. 그래서 "양미숙과 달리 남자를 짝사랑하다 속앓이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제가 뭐 인기 연예인이다 그런 뜻은 아니고요. 어려서부터 남자 연예인에 대한 동경조차 없었어요. '내가 좋아한다고 만나나 주겠어'라는 현실적인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사랑에 목마른 양미숙을 연기하기가 처음엔 힘이 들었어요."

류승범과의 사랑과 결별, 재회 등을 거리낌없이 밝히는 당당한 성격의 이 배우도 혹시 영화 광고문구처럼 '이쁜 것들을 묻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피해의식을 느껴본 적은 없을까.

"묻어버리고 싶은 적은 없지만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 '예쁜 것'들을 미워한 적은 있죠. 출연한 TV드라마 시청률이 잘 안 나올 때는 다른 방송 출연자가 예뻐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가끔 했죠. 그래도 제 평범한 마스크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사람들에게 좀 더 사실적으로 어필할 수 있잖아요. 솔직히 저나 류승범씨나 시대를 잘 만난 듯해요. 하지만 저희 같은 개성파 배우들은 연기력이 더 요구되죠. 미모의 배우들은 연기 잘할 때까지 기다려주잖아요. 부럽죠.

그래도 전 그저 연기 잘하는 배우이고 싶어요. 그런 배우가 인생 사는 데도 훨씬 자유롭잖아요. 광고 속 공주 같은 여배우들은 상품을 위해 자기 이미지를 팔았으니 현실에서 깨선 안 되는 면이 있죠. 저는 돈과 바꿀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어요."

양미숙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내비쳤지만 산발한 듯한 머리에 눈을 부릅뜬 포스터 사진 등은 그에게도 충격적이었다. "나중에 자식이 볼까 두렵다"며 "작은 모니터로만 영화 편집본을 보다가 대문짝만한 스크린으로 보니 더욱 놀랐다"고 말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여배우가 망가졌을 때 즐거워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더욱 파격적인 여자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여자 캐릭터가 단조로운 시대, 이렇게 개성 넘치는 역할들을 맡고 있으니 저는 그나마 운이 좋은 듯해요."

■ 대사로 본 '홍당무'

박찬욱 감독이 "전대미문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어 제작에 나섰다"고 밝힌 '미쓰 홍당무'. 박 감독의 말처럼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은 엉뚱, 유쾌, 씁쓸, 발랄한 헛다리 짚기의 명수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양미숙의 대사엔 그의 괴이하고 수상한 면면이 그득 담겨 있다.

- "이게 다 가난한 나라는 무시해도 된다는 천민자본주의 속성인 거야, 이게!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가난한 나라가 어떻게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어?"(고교 러시아어 교사에서 졸지에 중학교 영어교사로 배치된 뒤)

- "저는 일부러 전화 안 하는 건데, 그 분은 제가 그냥 안 하는 거라고 생각해버리면 어떡해요? 그렇다고, 제가 자꾸 전화해서, 일부러 전화 안 하는 거라고 말하면, 그건 묵묵히 기다려주는 게 아니잖아요."(고교 은사이자 동료 교사인 서 선생에 대한 사랑을 의사에게 고백하며)

- "사람이 원래 누구 좋아하기 시작하면요, 그 사람이 내 옷깃만 스쳐도 어머, 저쪽으로 가도 되는데 구태여 일루 지나가네, 나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죠…. 꼭 멍청한 여자들이 그런 거 헷갈려 가지고 죽네 마네 한다니까."(미모의 후배 여교사 이 선생이 서 굳珝珦?야릇한 관계를 밝히자 발끈하며)

- "니가 캔디냐? 다 너만 좋아하게?"(이 선생에게 동료 남자 교사들의 전화가 폭주하자)

- "세컨드면 됐지! 왜 그렇게 욕심이 많아! … 달 표면을 세컨드로 밟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 … 토리노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클래식 주법 남자 개인 2등은? … 그렇게 다들 1등만 외우니까 추잡스럽게 1등만 하려고 하는 거지! 천박하게"(이 선생과 서 선생의 로맨스를 막기 위해 이 선생의 집에 무단입주한 뒤 이 선생을 구박하며)

- "연애 하면 연애 한다, 끝났으면 끝났다, 왜 말을 안 해? 니가 연예인이야?"(이 선생과 서 선생이 별다른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글·사진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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