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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막아라/ <하> 우울증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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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막아라/ <하> 우울증의 그림자

입력
2008.10.0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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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년 전 이혼과 함께 딸(3) 양육권도 빼앗긴 강모(36ㆍ여)씨는 요즘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다. 식욕이 떨어져 하루 한끼도 먹는 둥 마는 둥이며 혼자서 술 먹는 일도 잦아졌다.

수려한 외모를 갖고 있으면서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싫어 성형수술도 벌써 3번이나 받았다. 수술 뒤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구와도 멀어진 강씨는 올 초부터는 자살 방법까지 상상하는 등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2. 지난해 11월 위 절제 수술을 받았던 주부 김모(55)씨는 지난달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수술 뒤 우울증에 빠져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 것.

문제는 이처럼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우울증이 실직, 이혼, 취업난 등 사회ㆍ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있는 사실이다. 급증하는 자살을 막기 위해선 우울증 치료와 예방이 최우선이지만, 우울증이 병이라는 사회적 인식 부족 등으로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국내 자살자와 우울증 환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6,437명이었던 자살자는 두 배 가까이 늘어 2007년에는 1만2,174명이나 됐다. 39분마다 1명씩 자살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병원 치료를 받은 우울증 환자도 2003년 39만5,457명에서 2007년 52만5,466명으로 늘었다. 5년간 33%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자살자의 60~80%가 우울증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 외국 학계의 일반적 보고일 만큼 자살과 우울증은 톱니바퀴 관계다. 국내에서도 200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서 자살 시도자의 70%정도가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장애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한 연구에선 우울증 환자의 15%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결과도 나왔다.

문제는 우울증 환자들이 이 같이 위험한 상태에 노출돼 있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나 우울증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병원 찾기를 꺼린다는 점이다.

최근 정규직 전환 좌절 등으로 대인기피증이 생긴 후 지하철로 뛰어드는 상상을 한다는 김모(38)씨는 병원 치료를 권유 받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기록이 남아 취직과 보험가입이 어렵다고 들어 병원 가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실제 우울증 환자가 전 국민의 2.5%에 이를 것이란 추정이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과 하규섭 교수는 "우울증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거나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 치료를 받는 이들은 환자의 20%정도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우울증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기분전환을 이유로 술에 의지하다가 충동적으로 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성신여대 채규만 심리학과 교수는 "우울증 환자에게 술은 자살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며 "최진실씨가 신경안정제를 먹을 정도였는데 주변 사람들이 술을 권했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얼마나 우울증에 무지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과 하태현 교수는 "우울증은 전문의를 찾아 약물과 생활 치료를 병행하면 80-90% 치료가 가능하다"며 "스스로 심각성을 알고 병원을 찾는 것이 완치의 첫 걸음"이라고 조언했다.

우울증은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에 따른 소외감 등에도 크게 기인한다. 우울증이 현대의 질병으로 불리는 이유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 인류를 괴롭힐 주요 질병으로 우울증을 꼽았고, 2020년에는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는 질환 중 우울증이 1, 2위를 다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가족과 공동체 중심이었던 우리사회가 원자화하면서 우울증과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며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경우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 우울증 자가진단 및 예방책

우울증이 탤런트 최진실씨 자살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면서 우울증 환자 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나 주변 인물의 증상이 우울증인지 아닌지, 병원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우울증 자가진단법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하는 BDI(벡 우울 척도ㆍBeck Depression Inventory)를 활용해 스스로 진단해볼 것을 권한다.

BDI는 세계적인 인지치료학자 아론 벡이 1961년 고안한 우울증 판단 척도. 인지ㆍ정서ㆍ동기ㆍ신체적 증상을 포함한 21개 문항으로 구성된다.

각 질문에 대해 심한 정도를 0~3점으로 평가해, 그 총점으로 자신의 荑點?정도를 판단한다. 대한임상건강증진학회는 BDI를 일부 수정한 20개 문항의 자가진단법을 마련,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측정결과 16점 이상이면 중한 우울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을 정도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잡아 상담ㆍ약물치료조차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재발한 경우가 아니라면 치료기간은 2~3달 정도로 길지 않다.

김현우 단국대병원 정신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는 "우울증은 낫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면서 "중한 정도에 따라 치료기간에 차이가 있을 뿐 반드시 완치되는 병"이라고 강조했다.

10~15점이면 가벼운 우울 상태로 운동, 여행, 드라이브, 친구들과의 대화 등 기분전환으로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이 검사는 조용한 곳에서 혼자 하는 게 좋다. 지난 일주일간 자신의 신체, 정신상태를 토대로 질문에 답하면 된다. 각 항목의 점수가 몇 점인지에 집착해 고심하지 말고 문항을 읽은 후 처음 떠오르는 점수를 그대로 답안지에 작성해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김 교수는 "BDI가 우울증 중증도 판단에 유용한 검사법이기는 하지만 기분이 가라앉았다가 좋기를 반복하는 조울증의 경우 제대로 판정할 수 없다"면서 "조울증이 의심되면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또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고 모두 치료를 하는 것은 아닐 뿐더러 우울증은 유전질환도 아니다"라며 "정신과 방문을 꺼리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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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대부분 사전에 징후… 예방 프로그램 다양화를

자살의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대한사회정신의학회는 2006년을 기준으로 자살로 인한 비용을 3조8,500억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탤런트 최진실씨의 사망을 계기로 자살예방교육도 활발해지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계층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서울시 교육청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6일 학생들이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지도, 감독을 강화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일선 학교에 발송했다.

특히 전국단위의 학력평가 시험이 각급 학교 단위로 줄줄이 예정되어 있어 학생들이 자칫 성적을 비관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8일 초등학교 3학년 기초학력진단평가를 시작으로 14일과 15일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업성취평가가 있고, 11월 13일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전문상담기관의 활동도 활발하다. 생명의 전화는 10일 '생명사랑 밤길 걷기대회'를 통해 모방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자살예방협회는 자살 예방수칙 홍보 등 대국민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전문기관의 예방 프로그램은 주변 사람들의 자살 징후를 인식, 개입해 자살을 막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살은 대부분 사전에 징후를 보이기 때문이다.

하상훈 생명의 전화 원장은 그러나 "중앙정부의 지원 예산 없이 참가자들의 자비로 활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일본처럼 국가차원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한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떨어뜨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간호학과 이광자 교수는 "자살의 특성상 젊은이와 노인, 여성과 남성 등으로 세분해 예방 교육이 이뤄져야 실효성이 있다"며 예방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주문했다.

윤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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