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47)씨는 지난 1년간의 자신을 '사표 쓰는 남자'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9월엔 9년간 일해 온 부동산임대업체에서 권고사직으로 쫓겨났고, 올 1월 새로 들어간 외국계 회사에선 2개월도 안 돼 잘렸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회사 두 곳에서 버림받은 격이다. 남들은 "고작 두 번 사표 내놓고 엄살이 심하다"며 비웃을 수 있다. 그러나 가정의 생계를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하는 40대 가장이 받은 충격과 상실감은 크고 깊다.
이씨는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두 번째 실직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5월, 그는 지금의 회사인 싱크대 배수 관련 제품을 만드는 그린환경산업개발㈜에 관리과장으로 입사했다. '사표 쓰는 남자'는 절망을 딛고 '부지런하고 자신감 넘치는 오뚝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지난해 9월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을 땐 정말 참담했다. 관리부장으로 회사의 경영 위기에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5개월분 월급이 밀려도 큰 불평 없이 회사의 회생을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권고사직은 가혹했다. 엄청난 배신감에 며칠 밤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훌훌 털고 새 둥지를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정든 회사를 떠났다.
방황은 짧게 끝나는 듯 했다. 올해 1월에 민간 취업사이트를 통해 명품을 수입해 면세점 등에 납품하는 외국계 회사의 관리부장으로 들어갔다. 좋은 학력과 경력 덕분이었다. 그런데 영어가 문제였다. 서류 작성, 이탈리아 본사와의 국제전화, 업무 이메일 등 거의 모든 일이 영어로 이뤄졌다. 영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3월초 사표를 쓰고 나와야 했다.
지난해 9월 실직 뒤 그는 맨 먼저 서울 여의도의 노사공동재취업센터에 등록했다. 이 센터는 한국노총과 경총이 노동부 고용보험기금을 예산으로 운영하는 비영리 재취업 전문알선기관이다. 이 곳에서 그는 '구직자 처세술'을 터득했다.
자신감 찾기부터 시작했다. "분명히 나를 찾는 곳이 있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었다. 명함도 만들었다. 명함에 적힌 건 고작 이름, 주소, 휴대폰 번호밖에 없었지만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네며 자신감을 키웠다.
부지런도 떨었다. 몸이 처지면 정신도 무너져 아무 것도 못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낮엔 거의 집에 붙어 있지 않았다. 능력과 조건이 맞는 구인 기업이 나오면 곧바로 문을 두드렸다.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지원서를 낸 곳은 약 180곳. 모두 안 됐지만 쉬지 않고 구직활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짬짬이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했고, 설거지 등 집안 일도 매일 했다. 백수 신세한탄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틈이 없었다.
이씨는 "재취업의 가장 큰 원동력은 실직 동안에 부지런히 움직이고 자신감을 잃지 않은 덕분"이라며 "어렵게 찾은 직장인 만큼 업무를 잘 익혀 회사에 도움이 되는 관리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김일환 고용정보원 홍보협력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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