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모태인 대통령직인수위가 큰 위세를 부렸던 올해 초 '공무원의 영혼'이 인구에 회자(膾炙)된 적 있다. 인수위가 참여정부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했던 국정홍보처의 행태를 비판하며 존폐문제를 도마에 올리자 홍보처가 막스 베버가 말한 '영혼없는 전문가'로서의 공무원상을 들이댄 것이다. "선출된 권력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게 공무원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홍보의 방향과 성격을 문제 삼아 조직의 존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자 정책홍보의 취지와 의미를 훼손하는 자충수"라는 나름의 반박논리도 제시됐다
▦ 당연히 거센 비난과 개탄이 이어졌다. 베버의 '영혼없는 공무원'은 근대 관료제를 비판하기 위해 고안한 용어인데, 이 말이 보신에 급급한 고위 관료의 자기변명 구실로 사용되니 통탄할 노릇이라는 것이다. 당시 김창호 홍보처장이 "관료는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을 언론이 왜곡했다"고 거들고 나서자 "사회학의 태두인 베버가 100년 전 근대 관료제의 맹목성과 위험성을 간파한 통찰력이 한국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렇게 국민들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막스 베버를 다시금 공부했다.
▦ 최근 이 용어가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우선 종합부동산세 완화 작업을 주도한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타깃이 됐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종부세 강화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까지 국정브리핑에 올렸다가 입장을 바꾼 배경을 묻는 질문에 "정권이 바뀌었으면 바뀐 방향에 따라 서포트해 주고 지원해주는 게 공무원의 기본책무"라고 강변했다. 단어 몇 개만 바꾸면 인수위에서 홍보처 간부들이 펼쳤던 공무원상과 똑같고,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의지'를 인선원칙으로 내세우는 청와대의 구미에도 맞다.
▦ 강만수 장관은 한 술 더 떴다. 그는 "불과 1년 전 복지를 시대정신으로 삼던 사람들이 성장 중심의 새해 예산을 만들 때 영혼의 혼란이 없었느냐"는 물음에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에 규정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신분보장의 정신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의 정책에 충실히 따르라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자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만큼 국민의 권력위임을 받은 정권에 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공무원은 정권이 스위치를 켜면 영혼이 없는 기계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이 주장을 베버는 뭐라고 할까.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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