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머리카락. 이것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국내에서는 힘들다. 대조할 유전자DB(데이터베이스)가 없기 때문이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에서도 범인 유전자는 확보했으나 수사를 더 진척시킬 수 없었다.
수사기관의 염원과도 같은 유전자DB법이 2006년 추진된 적이 있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개인정보를 관리하게 된다"는 반대여론에 부딪쳐 좌절됐다.
정부가 '유전자DB법(안)'을 다시 들고 나왔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유전자 정보를 제한하는 조항을 신설해 여론을 설득한다는 계획이다. 이번에는 과연 성공할까.
대검은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할'유전자 신원 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개인을 식별하는데 필요한 사항 외의 정보는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건주 대검 과학수사기획관은 "사람의 염기서열에는 질병ㆍ외모 등 개인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유전자 정보도 있고 의미 없이 숫자만 나열돼 지문처럼 단지 개인식별만 가능한 대목도 있다"며 "범죄인 유전자DB에는 개인식별에 필요한 정보만 담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대검은 이 달 중순까지 조문화 작업을 마친 뒤 법안을 법무부에 넘길 예정이다. 유전자DB가 관리할 범죄유형은 살인, 마약, 성폭력, 강도, 방화, 절도, 폭력 등 강력범죄다.
물론 단순절도나 폭행 등은 제외되며 흉기사용이나 조직폭력, 상습절도 같은 특수한 경우에만 유전자를 채취하게 된다. 경찰은 구속 피의자의 유전자를 채취하고, 검찰은 혐의가 확정된 기결수형자의 유전자를 채취하게 된다.
법무부나 대검은 유전자DB 구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은 이미 500만개 정도의 강력 사범 유전자DB를 가지고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일본은 관련 법이 없는데도 수사기관이 자체적으로 유전자DB를 구축해 수사에 사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미제 사건 외에는 사건이 마무리되면 관련 유전자 정보를 바로 폐기하는 실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유전자 DB만 있었다면 100여명의 성폭행 피해자가 발생한 '대전 발바리'사건에서도 피해자를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유전자DB법안의 통과는 반대여론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식별 정보 이외는 관리하지 않고 수사 이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민사회 단체의 기본 시각이다.
올해 3월 법무부가 법안 재추진 방침을 밝히자 진보신당이 "수사편의를 위한 인권 무시"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특히 시민단체에서는 유전자DB의 특성상 입력대상이 범죄인을 넘어 일반인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건주 기획관은 "법안에 따라 보관할 유전자 정보는 '숫자나열'과 같은 단순하고 의미 없는 식별 표시일 뿐"이라몀 "범죄 피해자를 줄이는 것 이상의 인권보호는 없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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