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책을 읽겠다는 다짐도 커지고, 문화행사를 찾는 일도 빈번해진다. 지성과 교양이든, 감정이든, 여하튼 가을은 무언가 부족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 간절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가을은 미술전시회 역시 풍성하다. 특히 시월은 작가와 관람객 모두가 선호하는 최고의 전시 시즌이다. 경기 불황 탓에 미술품 투자자들이나 전문 컬렉터들의 전시장 나들이는 다소 줄었지만, 일반 관람객들과 순수 컬렉터들의 입문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전시 관람의 문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이 처음이라거나, 그림을 볼 줄 모른다며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많다. 대개 갤러리들의 문은 실제로도 무겁다. 그 이유는 외부의 빛과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한데, 그 문을 여는 일이 멋쩍고 어색하다는 것이다.
불편한 마음을 지우고 전시 관람을 보다 편안하게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긴장된 상태로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느낄 수가 없다. 나는 쉬러 왔고 나는 즐기러 왔다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할 수도 있다. 기분 좋은 설렘은 좋지만 긴장된 마음은 작품 감상의 적이 된다.
작품 감상에는 정답이 없다. 수학 공식을 푸는 것도 아니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문제도 아니다.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따라서 남들과 다르게 느끼거나,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상상하거나, 심지어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해석은 자유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작품 감상에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전시 도록을 살피거나, 작가나 큐레이터에게 필요한 정보를 묻는다면 작품 이해는 더욱 편안해질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작가나 큐레이터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렵다 생각하겠지만, 작가건 큐레이터건 관심은 감사한 일로 생각한다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
작품에 대한 배려, 예의를 생각해야 한다. 그림과 너무 가까운 곳에서 큰소리로 말을 하여 침이 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큰 가방을 어깨에 메었다면 앞으로 감싸듯 안아 가방이 그림과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촬영을 하고 싶다면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것도 매너다. 그림을 소중하게 다루어 주면 감상의 가치는 그만큼 높아진다.
또한 작품은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작품은 가까이 들여다보고 큰 작품은 멀리서도 보아야 한다. 작품의 크기가 크건 작건 같은 거리에서 둘러본다면 제대로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큰 그림이라도 가까이서 디테일을 보기도 하고 멀리서 큰 느낌을 살피기도 한다. 거리에 따라 다른 느낌과 다른 감동을 발견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품가격 묻는 일을 망설인다. 그러나 "이 작품 얼마예요?"라는 질문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관심일 수 있다. 따라서 먼저 큐레이터나 전시 안내자를 통해 가격을 물어보는 센스가 필요하나, 여의치 않을 때에는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아도 좋다. 특히 대규모 아트페어는 일종의 미술시장이다. 가격 묻는 일에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머릿속의 지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어색함을 접고 전시장 문을 자주 열다 보면, 그림이 주는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선선한 바람과 높은 하늘, 눈부신 햇살이 가득한 가을이다. 전시장을 찾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그림과 더불어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하였으면 좋겠다.
안진의 한국화가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