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국회에서 한나라당 모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축하금으로 500억~600억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했고, 또 다른 의원은 "북한이 내년 6월 15일을 남북합방일로 정하고 서울의 모든 친북세력에게 총궐기 준비를 지시했다 하더라"고 했다. 면책특권을 악용한 이 말들은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유포됐다. 당시 찌라시의 문제점에 분노했던 이해찬 의원은 국무총리가 된 후 다시 그 폐해를 경험했다. 2005년의 이른바 '연예인 X파일 사건'이다. 총리가 '찌라시와의 전쟁'을 선포하다시피 하고 서울중앙지검에 전담 검사까지 만들었다.
■찌라시는 일본말 '散(ち)らし'로, 흩뿌리는 것, 즉 광고지나 전단지의 의미다. 전봇대나 승용차에 마구 붙이는 이상한 것에서부터 배달신문 사이에 끼워진 세일광고까지 다양하다. 광고찌라시와 증권가 찌라시는 구별된다. 옛 소련이 몰락한 직후 불신 언론을 대신했던, 정치인이나 사회단체가 자신들의 주장을 써서 뿌렸던 유인물(тираж)도 찌라시로 불렸다. '일본 찌라시'가 광고전단이라면, '러시아 찌라시'는 증권가의 그것 정도 되겠다. 과장되고 일방적인 주장이기에 객관성이 없지만, 관심을 끌어 소문을 타야 하니 내용은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최진실씨 자살의 한 원인으로 증권가 찌라시가 도마에 올랐다. 이것들이 모두 증권가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1970년대 증권가에서 기업의 부침을 관찰하느라 시작됐지만, 80년대엔 각 기업의 정보팀끼리 정부와의 접촉을 공유하는 수단으로, 90년대 이후엔 정치권의 소문과 뒷일을 염탐하는 방안으로 활성화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사설 정보업체가 전문적으로 만들어 비싸게 팔기도 한다. 자극적 관심거리엔 염문 스캔들이 많아 연예인 소문의 온실이 된다. 가수의 엽기적 폭행, 탤런트의 동거, 여배우의 낙태 등이 돈벌이를 위해 제조되기도 했다.
■활자로 인쇄된 찌라시는 읽는 이의 '신뢰'를 증폭시키고, 인터넷의 댓글과 악플, 휴대폰 메시지 등은 루머에 날개를 달아 준다. 보지 않으면 소외되는 것 같고, 읽고 나면 남에게 전하고 싶어 안달이니 찌라시는 중독성이 강하다. 그 내용 가운데 나중에 사실로 드러난 것도 있었다며 '고급정보'에 접한 희열을 말하는 중독자도 있다. '처녀 점쟁이'의 숱한 점괘 가운데 맞는 것만 기억해 그를 '용한 예언자'로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도 점괘는 남에게 적극적인 피해는 끼치지 않는다. 해악도 불사하는 '유언비어 모음집'에 대한 단속은 당연하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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