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책 판매가 부진하기는 출판대국이라는 일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창간 수십년, 길게는 90여년을 헤아리는 명성 있는 잡지들이 시사, 여성, 만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올해 들어 줄줄이 휴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일본출판협회 통계로는 2003년부터 5년 동안 문을 닫은 서점이 5,600개를 넘는다. 영화 붐에다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의 인기로 수많은 잠재 독자들이 책에서 멀어지는 데다 저출산으로 절대 독서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전문가 필자ㆍ발빠른 기획이 특징
그렇다고 일본 출판시장이 낙담한 채 주저앉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서적 판매가 부진하지만 최근 수년 동안 '신쇼(新書)'라는 판형의 책은 무척 잘 팔리고 있다. 문고본보다 약간 홀쭉하고 긴 모양(가로 10.5㎝, 세로 17.3㎝)으로 주로 시사ㆍ교양을 주제로 하는데, 200쪽 안팎의 부담 없는 분량이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 들기에 간편하고 직장인 대학생들이 자투리 시간에 언제든지 꺼내 읽을 수 있다.
신쇼를 처음 낸 것은 일본 진보 출판을 대표하는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이다. 이와나미가 고전 위주의 기존 문고본과 다른 '현대인의 현대적 교양을 목적'으로 '이와나미신서'를 기획한 것은 1938년이다. 판형은 한 해 전에 먼저 창간한 영국의 펠리컨북스를 참고로 했다. 펠리컨북스는 1935년 세계 처음으로 염가본 페이퍼백을 본격 출판한 펭귄북스의 자매 서적이다.
하지만 신쇼는 일본에 등장한 뒤 전후까지 수 십년 동안 특별히 눈에 띄는 출판물은 아니었다. 첫 인기 몰이는 1954년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을 주제로 한 주오코론샤(中央公論社)의 <여성에 관한 12장> 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부터다. 이후 일본 출판계에서는 신쇼 창간 붐이 일었다. 1950년대 후반과 1980년을 전후해 두 차례 더 붐을 맞았고 2003년 <바보의 벽> 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바보의> 여성에> 채털리>
이와나미를 필두로 주오코론샤, 고단샤(講談社), 신초샤(新潮社), 고분샤(光文社) 등이 주도하는 신쇼는 현재 150여 종에 해마다 2,000종이상이 출간되고 있다. 안정된 유통망을 가진 대형출판사 중심으로 초판 발행부수만 7,000~1만부 정도. 한 해에 2,000만 부 가까이 팔려 전체 시장 규모가 130억엔(1,300억원)을 넘는다.
신쇼 인기의 비결은 주제를 가리지 않고 독자들이 요구하는 정보면 무엇이든 제공한다는 점이다. 최근 베스트셀러를 꼽아보면 420만부 넘게 팔린 <바보의 벽> 같은 실용서를 비롯해 <야스쿠니(靖國)문제> <국가의 품격> 같은 시사평론서, <웹 진화론> 같은 정보사회평론서 등 다양하다. 웹> 국가의> 야스쿠니(靖國)문제> 바보의>
독서인구 줄지만 개발하기 나름
필자를 학자로 한정하지 않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동원하거나 월간지나 계간지의 특집을 연상할 정도로 빠른 기획과 출판도 인기의 동력이다. 정보를 독자들이 원할 때 바로 제공하는 데다 일반 단행본의 절반 이하인 700엔 안팎의 저렴한 가격도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신쇼 붐으로 일본 출판시장이 다소간 활기를 찾은 것은 물론이다. 소설로만 치닫는 독자들을 논픽션으로 끌어들이는 데 신쇼가 한 몫하고 있다며 출판의 성공이 영화나 인터넷의 인기와는 다른 의미의 사회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온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책만 좋다면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는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김범수 도쿄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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