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편향에 대한 불교계의 항의가 누그러진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지역별로 범불교도대회를 치르고, 종교차별 금지 법제화를 꼭 이루겠다는 작정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신교 근본주의자라서 임기 내내 종교 편향이 불거질 개연성이 크기 때문에 미리 채비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 '근본주의'라는 말이 알려진 것은 이슬람을 통해서였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이슬람 과격단체들의 반미ㆍ반서구 테러를 서구 언론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전했다. 근본주의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은 이 말이 테러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슬람교에는 근본주의가 없다고 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에서 세속화와 성서비판학 등으로 개신교의 근본교리가 부정되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개신교 일파에서 출현한 것이 근본주의다. 반면 이슬람 역사에서는 근본적인 것이 도전을 받거나 거부돼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근본주의와 같은 것이 필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말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는 것이 이슬람학 권위자인 '깐수' 정수일 박사의 분석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서구의 학자들인데, 이슬람과 개신교 근본주의 간에 '전투성'이란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체가 있든 없든 그 성격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9ㆍ11테러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저질렀고, 그에 대응한 미국의 대테러전쟁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감행한 것이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원조 근본주의'는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구한말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근본주의는 그동안 수면 하에 잠복해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 근본주의가 이제 '장로 대통령' 정권 출범을 계기로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개신교 보수진영에서는 정당을 만들어 정치세력화를 꾀하려는 목소리와 움직임이 한층 커졌다. 불교계의 집단행동은 이 원조 근본주의의 전투성에 자극을 받아 유발된 비불교적인 반응인 셈이다.
근본주의가 좋지 않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창시자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근본주의라면 누구든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후대에 교회 정치로 만들어진 교리를 방어하기 위해 바깥을 향해 공격적으로 분출되기 때문에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이다.
한반도는 근본주의가 번식하기 쉬운 토양인 것 같다. 조선은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로 중국보다 더 유교적인 사회였다. 중국에서 유교의 흐름이 바뀌고 나서도 조선은 성리학의 근본을 고수했다. 현대에 조선과 같은 사회가 출현한다면 서구의 학자들은 틀림없이 '유교 근본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하면서 3D 업종을 더욱 싫어하게 되고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더 많이 유입될 전망이다. 이슬람이 한국에서 대대적인 선교를 하려 한다는 개신교 일각의 주장은 근거 없는 기우인 듯하지만, 동남아 출신 노동자가 늘어나면 이슬람교는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수십 년 후 개신교 근본주의와 이슬람교 근본주의가 맞붙는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남경욱 문화부 차장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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