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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미국이라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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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미국이라는 나라

입력
2008.10.0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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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두 달 동안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파동 이후 생명윤리 문제가 크게 불거지자 정부는 선진 생명윤리 심의제도와 절차를 배워 실천할 전문가를 모집, 파견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보아 알겠지만 미국 여행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나 역시 비자를 발급 받기 위해 미 대사관 밖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고, 입국장에서도 길게 줄을 서서 지문과 눈동자를 미국 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야만 했다.

생명윤리도 결국 서비스상품

16년 전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신기했고 어서 선진 문물을 배워 돌아가야 한다는 결의에 차 있었건만 이번에는 어째 모든 것이 마뜩치 않았다. 그렇게도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개인주의ㆍ자유주의의 나라 미국이 자기 나라에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개인의 생체 식별정보를 당사자 동의도 없이 마구잡이로 수집하고 있으니, 시험 대상자의 자율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생명윤리인들 제대로 지켜지겠는가? 맙소사, 내가 이런 나라에 생명윤리를 배우러 오다니!

이렇게 미국의 선진 생명윤리를 배워야겠다는 의지는 처음부터 나의 삐딱한 시선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보고 들은 대로 따라 하는 것만이 배움은 아니지 않은가? 이후로 나는 미국의 생명윤리를 반면교사로 삼아 비판적 관찰자가 되기로 작정했다. 과연 배움의 방향을 수용에서 비판으로 바꾸었더니 미국이라는 나라와 그들이 운용하는 제도의 밝은 면과 그늘이 두루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삐딱한 시선에 걸린 미국은 크게 세 가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첫째는 거의 모든 것이 사유화ㆍ상품화되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회적 관계가 무척 합리적이라는 것이며, 셋째는 사회의 운용기제가 경제 주체들 사이의 협력이 아닌 이해관계에 따른 다툼, 즉 배타적 경쟁으로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제는 생명윤리에도 어김없이 구현되어 있었다.

내가 연수를 받았던 생명윤리 심의기구도 정부기관이나 비영리 공익기구가 아니라 이윤 창출이 목적인 사기업이었으며, 어떤 연구를 허가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과정 역시 시장에서 거래되는 서비스 상품에 불과했다. 그곳의 주고객은 임상시험을 통해 신제품의 유효성을 검증 받아야 하는 거대 제약기업이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복잡한 규제를 피해 합법적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유효한 결과를 얻어 상품으로 내놓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윤리심의 회사는 법률적ㆍ의학적ㆍ행정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수수료로 운영된다. 고객을 확보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만큼 업무 처리는 놀랍도록 신속하고 효율적이며 합리적이었다. 인간과 생명의 가치를 다루는 윤리 심의과정이 사유화ㆍ상품화되어 시장에 맡겨진 이상한 구조는 그만두고 이런 합리성은 적극적으로 배워 마땅했다.

하지만 미국의 그늘은 바로 그 무섭도록 차가운 합리성 속에 숨어 있었다. 생명윤리 심의회사 직원의 대다수는 생명연구의 절차적 합리성을 따지는 변호사였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다루는 생명윤리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그들의 윤리는 생명연구의 결과나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는 여러 주체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름은 윤리지만 결국 모든 것이 법 절차와 시장의 논리로 환원되는 구조다.

그런 미국을 따라만 가면 되나

우리 정부의 정책목표는 시장의 합리성을 보장하여 경제주체들이 규제 없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하는 데 있으며 그 모델은 모든 것을 사유화하고 상품화하는 미국이다. 하지만 최근 빚어진 미국의 금융위기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아프게 보여준다. 이 사태는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의 제도와 규범을 모방만 해서는 곤란하다는 교훈이며, 1년 전 내가 경험했던 미국의 문제들이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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