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의 사정권에 든 유럽 국가들이 미국식 금융구제 조성을 두고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4일 프랑스 파리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긴급 금융 정상회담'을 열어 금융위기 대처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회담 개최 전부터 주요국들 간에 심각한 이견이 드러나고 있다고 2일 AFP통신이 보도했다.
회담에는 사르코지 프랑스대통령,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실비에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 함께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 겸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의장,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이 참석해 다음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주요8개국(G8) 외무장관회의에 앞서 EU측의 의견을 조율할 예정이다.
하지만 나라별로 처한 상황이 달라 실효성 있는 공동대책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1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망했다. 회담에 앞서 프랑스는 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을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도록 3,000억유로(약 510조원) 규모의 금융구제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독일은 즉시 이를 거부했고 영국 역시 회의적 입장이다.
반면 네덜란드는 기금 창설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펀드 조성 여부가 논란에 휩싸이자, 회의를 제안한 프랑스는 최초 기금 제안국은 프랑스가 아니라 네덜란드라며 한발 빼는 모습이다. 또 주세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은 "금융위기에 장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EU차원의 회원국 은행 감독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역시 합의에 이르기 힘들 전망이다.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30일 미국 발 금융위기를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나라별 시각차를 비교 보도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과 깊이 연관돼 있는 영국의 대다수는 미국의 구제금융안이 조속히 처리돼 미국 발 금융위기가 영국까지 휩쓸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한편에서는 모기지론을 주로 처리하던 노던록, 할리팩스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HBOS), 브래드포드 앤 빙리 등에 잇따라 거액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자, "오만한 금융기관들을 국민이 혈세로 보전할 수 없다"는 납세자들의 반대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프랑스는 이번 금융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결함이 입증됐으며,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시장이 언제나 옳다는 발상은 미친 생각"이라고 주장하며 경제분야의 국가개입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 변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이 위기에 빠지며 천문학적 액수의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것을 지켜본 프랑스인들은 미국이 추진하는 구제금융에 대한 미국 서민들의 반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독일 국민들에게 미국의 금융위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독일인들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대부분 저축을 하지 은행융자를 얻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심지어는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마디로 붕괴될 '거품' 자체가 없다. 다만 독일 은행들이 미국에 투자를 많이 했고, 미국이 불황에 빠지면 독일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는 정도이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1일 금융위기에 대한 국가별 대응은 차이가 있지만, 유럽인들은 공통적으로 "우리는 항상 규제 없는 자유 시장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그런 우리를 비웃었다. 그러나 결국 미국이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유럽이 치러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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