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계급 분노의 시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계급 분노의 시대

입력
2008.10.02 00:11
0 0

월요일 반란의 진원은 벨트웨이 안쪽 워싱턴이 아니었다. 미국의 수도를 감싸는 환상도로를 수백㎞, 수천㎞ 벗어난 곳에서 이미 대반란의 기운은 싹트고 있었다. 조지아의 웨이트리스, 미네소타의 농부, 플로리다의 자영업자, 오하이오의 싱글 맘, 플로리다의 주택중개업자. 미국의 근로 중산층들은 7,000억달러의 세금을 쏟아부어 월가를 살리려는 구제금융안이 발표되면서부터 반기를 준비했다.

날아오는 청구서를 감당하지 못하는 페이 체크(Pay Checkㆍ급료 수표), 신용한도가 바닥난 크레디트 카드를 쥔 서민들은 금융 제국이 붕괴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귀담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구제금융의 과실이 물 흐르듯 서민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정부의 설득은 탐욕의 거리를 살리기 위한 사탕발림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행동했다. 주말 지역구를 찾은 연방 의원들에게 서민들은 전화로, 이메일로 항의했다. "왜 우리가 부자를 위해 세금을 치러야 하느냐"는 목소리는 차라리 순진했다. 그들은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구제안이 아니라 월가의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한 기소장이라고 외쳤다. 서민들의 외침은 포천지의 지적대로 미국에'계급 분노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렸다.

물론 계급적 분노가 응축된 곳은 월 스트리트이다. 기업의 파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천만달러의 연봉과 퇴직금, 스톱옵션까지 챙기는 CEO와 펀드 매니저들이 활보하는 욕망의 거리를 향해 미국의 서민들은 이참에 분노의 돌팔매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 통계는 미국 CEO들의 연봉이 일반 노동자 임금의 무려 364배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서민들은 "경영자에 대한 높은 보상이 기업의 가치를 올린다"는 논리에 짓눌려 지냈다.

이제 그들이 천문학적 보상을 받고도 금융 위기를 불러온 월가의 CEO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미 하원의 금융구제안 부결은 도덕적 해이에 젖은 월가와 수십만달러의 보너스 잔치를 즐겨온 월가의 금융회사를 살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협박하는 정부에 대한 서민들의 반격이었다.

위기엔 혼란이 따른다.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자란다."부자를 혼내주라"는 감정에 편승한 정치인들이 앞 다퉈 CEO의 연봉 제한을 주장하고 있다.그들 중엔 "시장은 시장에 맡겨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많다. 9년 전 재정의 탈규제를 주창했던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이제 월가를 겨냥, '올드 보이'들의 네트워크를 부셔야 한다고 외치는 포퓰리스트로 거듭 났다. 구제법안에 반대한 의원들은 분노하는 민의에 충실했다는 명분을 달 수 있다. 하지만 코 앞에 닥친 선거를 의식, 반대표가 두려워 민의에 몸을 숨긴 그들은 또 다른 의미의 포퓰리스트이다.

금융제국에 금이 간 미국에서 분출되는 계급적 분노는 돌반지를 내다팔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었던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일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분노하는 계급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 백수들,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아야 하는 자영업자들, 학원비를 대려고 펀드에 투자했다 절반의 원금을 까먹은 월급쟁이들. 금융위기의 한복판을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한숨은 포퓰리즘이 움틀 수 있는 훌륭한 토양이 되고도 남는다."금융위기에 선제대응을 잘해 충격이 적은 편"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현실 진단은 고환율, 고금리와 높은 물가 속에서 분노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한가하게 들린다.

김승일 국제부장 ksi8101@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