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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공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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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공매도

입력
2008.10.0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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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금! 금! 금!이라는 외침뿐이었다. 금값이 치솟자 금 거래소는 흥분에 휩싸였다. 광적인 매도와 매수세력들로 가득찬 월스트리트 금 시장은 환자들의 소요가 발생한 정신병원과 같았다. 한 주 전까지 온스 당 130달러 대에 거래되던 금값이 158달러 선까지 치솟자 공매도(空賣渡) 세력들은 더 큰 손해를 보기 전에 계약을 청산하고자 발버둥쳤다.

월가의 협잡꾼 굴드 일당은 더 나아가 160달러에 매수 주문을 냈다. 금값을 끌어올린 후 팔아 차익을 챙기고, 낮은 가격에 금을 빌려 판 공매도 세력에 타격을 주고자 한 것이다. 공매도 세력은 기겁했다.

▦ 몇 초간 침묵이 흐른 뒤 한 브로커가 "여기 내가 팔겠소!"라며 굴드 일당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매도 주문을 내놓았다. 적막한 호수에 갑자기 날아든 돌덩이 하나로 파문이 일듯 거래소는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브로커들이 사태를 직감하고 금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매도 주문이 나온 지 단 몇 초 만에 금값은 20달러가 폭락해 140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날 월스트리트에는 대화재나 재앙이 훑고 지나간 폐허처럼 침묵과 고요만이 흘렀다. 1869년 9월 24일 미국 월스트리트 금 거래소에서 투기세력과 공매도 세력간에 벌어진 '검은 금요일' 금매집 사건이다.

▦ 공매도(short-selling)는 '없는 것을 판다'는 의미로, 주식이나 채권을 보유하지 않은 채 남의 주식이나 채권을 빌려 판 뒤 되사서 갚는 금융기법이다. 주가가 내리면 이익이고, 반대로 오르면 손해를 보는 셈이다. 월가에선 주가조작 스캔들이나 폭락장세 때마다 공매도가 판을 쳐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공공의 적'으로 비판 받았다. 위의 금값 파동 당시 공매도 세력은 낮은 가격으로 금을 빌려 파는 공매도를 일삼다가 굴드일당의 매집작전에 희생양이 돼 손해를 보게 되자 패닉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대공황을 초래한 1929년 10월 19일 '검은 목요일'에도 공매도 세력이 물량을 쏟아내 주가 폭락을 부추겼다.

▦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월가의 금융위기를 진정시키는 방안으로 공매도를 금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 금융위기 후 우리나라 주식을 대거 팔고 철수하면서 공매도까지 벌여 지탄을 받았다. 공매도가 폭락장세에서 손실을 줄여주는 버팀목이 된다는 반론도 있지만, 지금은 금융위기를 확산시킨 주범이라는 비난이 더욱 공감을 얻고 있다. 세계 증시가 회복될 때까지 공매도는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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