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의 시대, 문학의 시대는 가고 영상의 시대, 영화의 시대가 왔다는 풍문처럼 최근 몇 년 동안 홍수처럼 쏟아진 책들이 할리우드 영화라는 창을 통해 미국의 정치ㆍ사회ㆍ문화ㆍ이데올로기를 들여다보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문학으로 미국을 읽으려는 노력은 시대착오적인 도로(徒勞)일까.
미국문학 전공자인 김욱동(60) 한국외대 통번역학과 교수는 <소설의 제국> (소나무 발행)에서 이런 편견의 근거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준다. 그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자> ,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등 8명의 미국 근ㆍ현대 소설가의 작품 10편을 정치하게 분석, 미국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호밀밭의> 위대한> 주홍글자> 소설의>
김 교수는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지녔으나 원주민 학살, 흑인노예, 물질주의 등이 겹쳐지며 이 이상은 빛을 잃었다"며 "책에 소개한 작가들은 한 마디로 미국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예리하게 포착한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위대한 개츠비> 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가난하지만 낭만적인 중서부의 청년 개츠비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이 속물적인 동부의 갑부와 결혼한 첫사랑 데이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불법 밀주 판매, 채권 불법유통, 도박 등을 통해 부를 축척한다는 인생역정을 다룬 이 작품은 행복과 자유의 추구라는 다분히 정신적인 '미국의 꿈'이, 물질주의와 손을 잡으면서 어떻게 변질되고 타락했는가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이와 함께 저자는 1884년 <허클베리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에서 1970년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마여 앤젤루)까지 수많은 미국작가들이 천착해온 인종주의나, <호밀밭의 파수꾼> 이 그려내는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른 인간 소외 등 일그러진 아메리카의 초상을 핍진하게 보여준다. 호밀밭의> 새장에> 허클베리핀의>
인종ㆍ계급ㆍ젠더ㆍ자연이라는 관점에서 텍스트를 읽는 '문화연구이론'을 문학비평에 접목해온 문학평론가인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이런 비평의 도구들을 솜씨있게 활용한다.
"오랫동안에 걸쳐 천성이 되다시피한 인습적인 습관을 여성도 정당하고 적절한 지위 비슷한 것이나마 차지하게 될 때까지 뿌리채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홍글자> 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의 말을 근거로 그녀를 성숙한 페미니스트로 추론하기도 하고, 유복하게 살아가는 변호사 가문의 사람들과 무식한 시골농부들과 흑인들이 할거하고 있는 <앵무새 죽이기> 를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읽어내기도 한다. 앵무새> 주홍글자>
그는 특히 이 책에서 최근 미국 비평가들 사이에 '제국주의자냐 아니냐' 하는 논쟁의 중심에 있는 마크 트웨인의 작품을 3편이나 분석하고 있다. "다양한 해석방법을 통해 미국의 고전을 동시대적으로 읽어내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김 교수는 2005년 2월 서강대에서 명예퇴직한 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한국계 미국문학을 연구하고 올해 초 국내 대학 강단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를 제국주의로 읽어내려는 해석의 도식성, 문학작품을 영화화할 때의 원작 훼손 등 영화로 미국을 읽어내려는 노력의 한계를 극복해보고 싶었다"며 "이 책이 원작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전채요리 구실을, 원작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후식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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