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사무실에서 강당을 거쳐 조금만 바깥으로 나가면 휴게의자가 있다. 주변으로 석조물과 조그만 연못, 울창한 숲과도 접해 있어서 그야말로 휴식에는 적격인 곳이다. 게다가 바람을 타고 항상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관장실에 갇혀 살다가 잠시 이곳에 앉아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의 녹턴(nocturne)을 듣노라면, 영화 <쇼생크 탈출> 에서 오랜만에 클래식을 접하고 감동의 물결에 빠진 죄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쇼생크>
그리고 실크로드의 배경음악이 숲속에 잔잔하게 깔리기 시작하면, 이미 폐허만 남긴 누란왕국의 영화를 회상하게 된다. 그뿐이랴! 가야금으로 연주되는 비틀스의 <렛 잇 비(let it be)> 를 듣게 되면 양악과 국악을 모두 넘나드는 절묘한 리듬감에 취하게 된다. 렛>
맨 처음에는 '현대식 건물의 건조함을 덜어주겠지'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을 뿐이지만 이제 음악선율은 관람객의 호응이 매우 높아져서 박물관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컨텐츠(contents)가 되었다. 그래서 직원들도 곡을 선정하고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이다.
하지만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노라면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은 관람객이나 직원만이 아닌 것 같다. 체험학습장으로 연결된 계단 위에 서 있던 다람쥐도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하고, 숲을 넘나드는 산비둘기, 콩새, 찍새, 크낙새도 날갯짓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그 중에서도 크낙새는 나무에 커다란 구멍을 뚫으면서 장단까지 맞추는 듯하다. 그리고 연못 속에서 유영하는 미꾸라지와 금붕어도 물 속에서의 몸놀림이 힘차게 느껴진다.
이처럼 박물관의 또 다른 식구인 새와 다람쥐, 물고기도 정원의 구석구석을 찾아드는 음악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음악이 있어서일까. 모두 자기들 나름의 영역과 삶의 방식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고, 각각의 그룹 내부에서도 자신의 위계와 역할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 동안 한번도 그들끼리의 다툼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옛 사람들의 말처럼 음악은 단언컨대 '조화와 질서의 상징'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고대인은 모든 의식에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물론 제사의식처럼 신을 부르기 위해 악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신분질서나 이미 체계가 잡힌 정치질서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왕과 신하, 백성들이 지켜보는 의식을 치르면서 기존질서의 조화로운 유지를 음악을 통해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음악이 있어야 이상적인 세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고구려인은 신선이 살던 세계나 극락정토의 세계를 선인(仙人)과 비천(飛天)이 직접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으로 상상하여 벽화에 그렸다. 우주 만물의 질서가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는 세계가 이상세계이며,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구체적으로는 음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 조금 더 이어지다 보니 그 동안 무언가를 해본답시고 박물관 안팎으로 많이 부대끼며 살았다는 자책이 들었다. 때로는 대외적으로 감당해야 할 박물관장으로서의 역할을 외면하면서, 때로는 박물관 내의 위계와 역할을 지키지 못하면서 조화롭게 살지 못한 듯싶었다. 역시 인간의 이상적인 삶이란 음악이 상징하는 것처럼 '조화와 질서' 속에서 슬기롭게 살아내는 것일 뿐인데….
유병하 춘천국립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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