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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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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석류

입력
2008.10.01 00:13
0 0

조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홍일점의 어원이 된 과일이 석류다. 많고 많은 과일들을 젖히고 투박하고 두툼한 입술의 보잘 것 없는 석류가 홍일점을 차지했다는 게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감이나 사과 입장에서 보면 어지간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까 짐작되는데, 생각해보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석류는 무엇보다 복잡한 내면을 지닌 존재다. 여타의 과일들처럼 달콤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시큼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분법을 무척 싫어하는 그는 중용지덕을 알아서 극단을 한 맛에 다 아우르고 있다. 요컨대, 달콤새콤한 것이다. 그 잊을 수 없는 맛처럼 석류는 이 시조 속에서도 독특한 태도를 보인다. "내가 어이 이르리까"라고 수줍은 척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종장에선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보소라, 임아 보소라" 하고 강한 열망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종장의 파열음 'ㅃ'은 허파의 날숨을 막았다가 일시에 터뜨리는 효과를 잘 익은 석류의 붉은 빛만큼이나 강렬하게 보여준다. 가슴을 빠개 젖히다니!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시조의 여인상이 아니다. 그 당돌함이 어떤 신세대 여성들의 구애 행위보다 더 적극적이다. 석류의 강렬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임 앞에서의 그 부끄러운 마음이 하필이면 투박하고 두툼한 과일을 홍일점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석류는 역시, 달콤새콤해야 제 맛이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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