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불안하다. 요즘 들어 부쩍 더 불안하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결국 세계금융의 판구조를 뒤흔들어 금융 대지진으로 이어질 징후를 보이자 전 세계가 전전긍긍이다. 조류인플루엔자, 닭고기, 쇠고기 파동으로 기진맥진한 한국인들은 9월 경제위기설에 시달리다가 이제 전 세계로 번진 멜라민 파동에 다시 한 번 쇼크를 받는다.
경제위기에 더해진 식품충격
기생충알 김치와 말라카이트 장어, 이산화황 찐쌀, 납덩이 꽃게, 농약 만두, 생쥐머리 새우깡에 이어 이번에는 아기가 먹는 분유부터 우유, 카제인까지 유제품에 플라스틱, 염료, 접착제, 비료 등의 원료로 쓰이는 멜라민이라는 공업용 화학 물질을 넣었다는 것이다. 식약청이 부랴부랴 유제품이 함유된 중국산 식품의 유통ㆍ판매를 일시 금지했지만, 그 목록은 한 눈에 들지 않을 만큼 길고 또 충격적이다.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국제사회에 사과하고 앞으로 중국제품, 특히 식품의 관리를 철저히 해나가겠노라 다짐하지만 선뜻 안심할 수는 없다. 중국 당국이 이미 2년 전 우유에 멜라민을 섞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묵살했다는 소식에 그저 분노할 따름이다.
자랑스레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내세우던 베이징 올림픽, 바로 그 순간에도 중국의 업자들은 아기들이 먹는 분유에 멜라민을 섞고 있었고 당국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방관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 나라가 어떻게 세계를 상대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힌다.
미국의 금융공학 천재들이 만들어낸 최첨단 금융시스템이 금융재앙의 위기를 부르고 중국 발 멜라민 파동이 지구촌 전체를 경악과 공포에 빠뜨린다. 세계는 불안의 원인과 구조, 전모를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자고 나면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미국에서 기침만 해도 몸살을 앓는 우리, 전체 수입식품 중 4분의 1을 넘는 중국산 식품에 식탁을 점령 당한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서 힘겨운 서바이벌 게임을 강요 받는다. 존재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서바이벌 코리아의 상황이 썩 좋지는 않다. 때만 되면 반복되는 대책이지만, 진부해도 경청할 필요는 있다. 외양간을 고쳐야 소를 잃는 일이 없을 터. 금융시스템의 선진화, 농수산식품부, 지식경제부, 식약청 등으로 분산된 식품 안전 관리업무를 통합적으로 담당할 기구로 미국 식품의약청(FDA)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식품 집단소송제, 식품제조자 무한책임제, 수입식품 전면표시제 도입도 좋다.
그런데 어쩐지 석연치 않다. 세상이 불안하기 때문에? 불안하기만 한 게 아니라 변한다. 그것도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선진화 말만 나오면 들먹이던 미국 투자은행(IB)의 말로를 보았으니 이제 어쩔 셈인가. FDA라고 해서 이 끝없는 사고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한 때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된 탈리도마이드 승인을 거부하는 등 미국인의 건강 수호자로 이름을 날렸던 FDA이지만, <처방에 의한 죽음(death by prescription)> 의 저자 레이 스트랜드는 그 수호신도 믿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처방에>
정확한 정보와 냉철한 대안을
FDA는 약물부작용 중 가장 심각한 것만 인정하며, 위험하다고 판단된 약품이 시장에 돌아다니는 걸 막지 못한다. 부작용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약효설명서에 몇 마디 추가하면 될 뿐이라고 한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제도나 기구가 궁극적인 답은 아니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그렇지만, 날로 불안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정부에게 제도와 책임있는 기구를 통해 자신들을 지켜 주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이해력과 정보력, 예측능력, 그리고 정부와 국민이 패닉에 빠지지 않게 하면서 냉철히 대안을 강구할 수 있는 정책역량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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