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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서울의 리바이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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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서울의 리바이어던

입력
2008.09.30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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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검과 화살로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비늘, 빈틈없이 촘촘하게 박힌 날카로운 이빨, 돌처럼 단단한 심장…' 구약 <욥기> 41장에 묘사된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의 모습이다. 언뜻 악어 같지만 '입으로는 뜨거운 불길을 내뿜고, 숨결만으로도 숯에 불을 붙이는' 능력은 오히려 용 같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괴수의 왕, 어둠과 혼돈의 힘을 상징하는 마왕이다. 이 정체불명의 괴물을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은 국가권력에 비유했다. 그가 절대왕권과 시민계급 어느 쪽을 옹호했건, 350여 년 전의 발상으로는 놀랍다.

■리바이어던은 서울에도 산다. 아니 전국 각지에 살지만, 서울에서 가장 크게 자라고 있다. 흐린 날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면 아파트 더미가 끊일 듯 말 듯 길게 이어져 괴물처럼 웅크리고 앉아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수많은 인민으로 이뤄졌듯, 서울의 아파트에도 칸칸이 무수한 시민의 삶이 들어차 있다. 그들은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힘겨우면 힘겨운 대로 저마다 크고 작은 바람을 아파트에 얹고 산다. 아파트는 이들의 바람에 힘입어 큰 힘을 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사회계약을 바탕으로 절대권력을 펴듯.

■서울 강남구 대모산 자락의 그린벨트를 풀어 임대아파트를 지으려던 계획이 수서동과 일원동 일대 기존 아파트단지의 반발에 떠밀리고 있다. 막강한 서울시의 행정권력조차 우물쭈물하게 만드는 아파트의 힘이다. 일대의 아파트 단지마다 나붙은 현수막은 '강남의 허파'를 죽이는 반환경적 정책을 험하게 비난하지만 껍데기 구호일 뿐이다. 그린벨트를 풀어서 짓겠다는 아파트가 잇따른 사례에서 보듯 주변 아파트 시세를 떨어뜨리는 임대아파트가 아니라, 가치를 끌어올리는 일반 중대형 아파트였어도 주변 아파트 단지마다 '대모산 지키기' 불길이 일었을까.

■속칭 '미아리 텍사스'를 밀어낸 것도 결국은 아파트다. 한쪽에 재개발 아파트가 들어선 후 명운이 기울더니, '길음 뉴타운' 탄생으로 팽배한 아파트의 힘에 숨결이 끊겼다. 장안동은 물론 강남 역삼ㆍ선릉역 일대의 유사 성매매 업소에 대한 대대적 단속 또한 아파트 단지가 근접해 올 때 이미 예견됐다. 탐욕으로 다른 탐욕을 물리치는 이런 힘이 주민 공동체 의식의 발현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소음이나 주차 문제로 이웃과 빚는 다툼이 더욱 잦아지고, 쓰레기 처리 수칙도 지켜지지 않는다. '만인을 향한 만인의 투쟁'만 무성한 꼴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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