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편견 딛고 1% 정예 여군 거듭났어요"
1950년 9월 1일 전쟁의 와중에 부산에서 여자의용군교육대가 창설됐다. 본격적인 여군 창설은 이 때로 본다. 1기생 491명은 3주간의 기초 전투훈련을 마치고 같은 달 26일 수료식을 가졌다. 2008년 현재 대한민국 여군은 4,900여명, 군 간부 정원 대비 약 2.7%다. 1999년 2,000여명으로 1.4%였으니 9년 만에 비중이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여전히 군대에선 귀한 몸이신 '대한민국 1%'다. 60년을 이어오며 많이도 변한 군대 내에서, 그보다 더 많은 변화를 겪었을 여군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어봤다.
도전하는 삶
군복 입은 여성을 보면서 '민간인'들이 많이 갖는 생각 중 하나는 '그 힘든 군대를 왜 제 발로 갔을까' 이다. "제 생일이 10월 1일입니다. 운명이죠. 초등학교 때 벌써 장래 희망을 여군으로 적어 놓았더라구요"(육군 연수경 상사ㆍ88년 임관). 운명이 아니라면 도전이다. 사실 모두 지원해서 들어온 여군들이기에 도전정신은 필수다. "처음이라는 것에 도전을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힘들겠지만 남보다 먼저 가는 길에 대한 성취감이죠"(해군 김부경 대위ㆍ03년 임관).
김 대위는 해군사관학교 여생도 1기다. "해병대는 금녀의 집단이라는 인식이 오래됐잖습니까. 도전이죠"(해병대 신선희 하사ㆍ04년 임관). 예나 지금이나 도전임은 변함이 없지만, 주위의 반응은 크게 달라졌다. "저 때만 해도 몰래 지원하고 그랬습니다"(육군 추순삼 대령ㆍ79년 임관).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가 약간 있었지만 나중엔 응원해 주시고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대견해 하셨습니다"(공군 금정현 대위ㆍ04년 임관).
여군에 대한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 "건강한 이미지, KS마크가 찍혔다고 여깁니다. 결혼할 때도 사관학교 졸업한 장교다 한 마디로 시댁에서 오케이를 받았습니다"(김 대위). 그래도 해병대는 약간 다른가 보다. "밖에서 제 빨간 명찰(해병)을 보면 측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훈련 힘들지 않냐고…"(신 하사).
여군 생활
누구나 입대하면 "말로 듣던 것과는 다르다"는 순간을 겪는다. 정보가 부족했던 과거일수록 더 그랬다. "20년 전에 정말 초소에서 총 들고 나라 지키려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여군훈련소에서 타자를 가르치는 겁니다. 인문계 고교를 나온 저는 그것도 잘 못했는데, 당시만 해도 여군 하면 거의 전부가 행정으로만 배치됐던 거예요. 1년이나 방황했습니다"(연 상사).
다행히 90년 여군 병과가 없어지면서 여군도 특기에 맞춰 남성과 똑같이 각 병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체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학습, 자기계발, 조직관리 등이 더욱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김 대위). 97년 공군을 시작으로 각 군 사관학교가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지만, 적응에 애로를 겪기도 한다. "체력적인 면을 빼면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유난히 여생도로서 주목을 받은 탓에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금 대위).
후회했던 적은 없을까. 다들 "힘든 적은 있었지만 후회하거나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다"고 했다. 잘 선택했다는 얘기만 나온다. "첫 비행도 그랬지만, 지난번 중국 지진 때 수송기를 몰고 구호물자를 싣고 갔었을 때는 정말 큰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습니다"(금 대위).
그래도 군대인데 여군에 대한 오해나 선입견, 차별이 아직 남아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 자체가 선입견입니다"(김 대위). 그 단호함에 더 이상의 질문이 어렵다. "결혼하면 그만둔다는 생각도 잘못된 겁니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 부부 군인에 대한 배려 정책이 많아요. 일반 직장보다 결혼 후 그만두는 비율도 적은 편입니다"(추 대령). 물론 여군의 숫자가 아직도 적은 것은 아쉽다.
추 대령은 "소령 때 육군대학에 교육을 갔는데 250명 남자에 여자는 혼자였다"고 기억했다. "정보, 네트워크 등 모든 게 부족해서 외로웠죠. 지금은 많이 늘었지만 적어도 15~30%는 돼야 조직 내에서 자생력이 생긴다고 봅니다." 국방개혁2020에 따라 간부 중 여군 비율은 2020년까지 5.6%로 확대될 계획이다.
삶과 여군
주부, 엄마로서 여군의 모습은 어떨까. 우선 고된 훈련으로 다이어트 고민은 없겠다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단다. "유격 갔다 와서 2㎏이나 쪘어요. 규칙적인 생활, 힘든 훈련에 식사량은 더 늘어난다니까요. 고민이 없을 리 있나요"(연 상사).
아이들 교육은 군대식으로 엄격하지 않을까. "엄격한 저는 거의 의붓엄마, 아빠가 엄마 역할"(추 대령), "딱딱하게 지시하고 그러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하지만 아이들이 느끼기엔 명령만 내리는 엄마"(연 상사)라고 한다. 연 상사는 "애는 쓰지만 아무래도 군 생활이 몸에 배어 잘 안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플 때가 있다"고 했다.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함상 생활을 하다 보면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익히게 됩니다. 앞으로 돈 벌어도 집을 넓힐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청소만 힘들 테니까요"(김 대위).
예비 후배들에게
군인을 꿈꾸는 젊은 여성들이 최근 들어 늘고 있다. "군인다움이 곧 남성다움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여성다움이 군인다움과 배치되는 것도 아닙니다. 남자 같은 여자를 뽑는 게 아니라, 여성이 필요한 곳이 있기 때문에 여성을 뽑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들어왔으면 합니다"(금 대위). "힘만 세다고 여군이 되는 건 아닙니다. 여성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생각을 해야 합니다"(김 대위).
이렇게 똑똑하고 든든한 여군들이 버티고 있어 대한민국 군의 미래는 밝다. "건군 1년이나 10년이나 100년이나 변함 없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군대가 될 것입니다"(연 상사).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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