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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째 영화 '비몽' 개봉, 달라진 모습 김기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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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째 영화 '비몽' 개봉, 달라진 모습 김기덕 감독

입력
2008.09.29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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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개봉하는 영화 '비몽'은 김기덕 감독이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걸이로 대중을 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한일 양국의 스타 배우 이나영과 오다기리 조가 남녀 주연으로 극을 이끌어 가며 예전 그의 행보와 보폭을 달리 한다.

김 감독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원초적인 날 것의 이미지를 한껏 자제했으며 해외 영화제 출품용과 별도의 편집본을 만들어 국내 관객들에게 선보인다는 점도 의외다. '비몽'으로 15번째 필모그래피를 써낸 김 감독이 국내 개봉판을 따로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소재와 화법의 독창성에 있어 '비몽'은 여전히 김기덕스러움을 발산한다. 한 남자가 꿈을 꾸면 한 여자가 그 꿈을 현실에서 실행하고, 그 두 남녀가 꿈과 잠을 매개로 인연을 맺고 사랑을 나누다가 파국을 맞는다는 내용은 분명 그답고, 남녀 배우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무탈하게 소통하는 형식은 그의 인장으로 작용한다.

싸움꾼의 이미지가 또렷했던 그는 이제 칼과 창을 내려 놓은 전사처럼 보였다. 대중과 소통하려는 영화도 그렇지만 현실에서의 그는 예전보다 웃음도 많아졌고, 여유도 엿보인다.

김 감독의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그의 문하생 장훈 감독이 연출하고 김 감독의 영화사가 제작한 '영화는 영화다'의 흥행 성공 때문일까. 실제작비 6억 5,000만원인 '영화는 영화다'는 전국 관객 100만이 넘어 제작비의 5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김 감독은 "저예산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편견이 한 꺼풀 벗겨졌다"고 평가했다.

"'비몽'은 5억원 정도 들었다. 내가 그동안 쌓아 온 작가영화에 대한 믿음으로 많은 배우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했기에 가능한 제작비다. 그걸 내가 배신해서는 안 된다. 어느날 내 영화에 100만 관객이 들었다고 해서 배 내밀고 오만해져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저예산이라는 말이 가난하다는 말이 아니길 바란다.

더 이상 저예산이라는 말도 숨겨서는 안 된다. 비용 절감이 다 프로덕션 노하우다. 나는 사실 10억 정도를 아끼며 영화를 촬영한다. 하루아침에 안 되겠지만 충무로도 이제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갈 것이다."

지난 수년간 그는 한국 영화계 화제와 논란의 중심부에 있었다. "영원한 비주류"라는 평가를 비웃듯 2004년 베를린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서 거푸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간판으로 우뚝 섰음에도 관객들의 홀대를 받았고, 2006년 '괴물'의 흥행 돌풍과 관련 "현재 한국 관객의 수준과 한국 영화의 수준이 맞아떨어졌다"는 말로 네티즌들의 무수한 비난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때 내가 특정 영화를 폄하한 게 아니다. 시장 구조의 불공평을 둘러 말했다. 한국 사회가 과대 상황에 대한 편식이 심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게 사실 맞지 않나. 당시 그런 발언을 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잘 나가는 감독들이 할 수는 없는 거고, 나야 혼자 우울하면 되니까. 거기에 대한 후유증은 지금 없다. 나는 내 의식 수준으로 영화를 만들면 되는 것이고 관객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영화를 보면 된다. 그 둘을 지나치게 일원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김 감독은 요즘 "멍하니 지낸다"고 했다. "젊은 시절 같으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주먹으로 벽도 치고, 남에게 핑계도 되고 그럴 텐데 지금은 '다 내 잘못이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작가는 의심이 있어야 되고, 자기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머리를 쥐어박아야 하는데, 이젠 글러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마음을 비워서 그런 듯하다. '이만큼 했으면 됐지 않나, 여기서 좀 못 한다고 옛날 것이 없어지나' 이런 식으로 자문자답을 많이 한다. 하지만 허무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글을 쓰려고 하다가도 그럴 필요가 있나 그런다. 사실 이러면 작가로서 끝이 난 거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그냥 지친 것 같다. 사람이 늙으면 자기 몸 지탱을 위해 지팡이를 짚는데, 너무 늙어 버린 마음을 지탱할 것이 없다. 혼자 멍청하게 있는 게 제일 좋다. 잠도 많이 자고."

그는 "이런 말이 웃길지 모르지만 최근 상업영화를 많이 본다"고도 말했다. "'영화는 영화다' 같은 영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제는 좀 늦었지만 대중적인 요소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는 영화다'에 많은 도움이 된 듯 하다. 할리우드영화, 오락영화 뭐 이런 영화를 만들진 않겠지만, 이제는 대중들과의 접점을 찾으려 한다. 어쨌든 시간은 많으니 영화는 많이 본다. 그러나 뭘 봐도 기억 나는 영화는 없다."

불황의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 요즘 충무로 영화들에 대해선 "노심초사해서 만들었을 남의 영화를 어떤 선입견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나치게 스타일에 치중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 있다. 영화라는 미디어의 기술이나 지식만으로 영화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영화는 그 사람의 인생을 걸고 만들어야 한다.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질감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학 나왔으니까, 유학 다녀왔으니까, 몇 년 조감독 했으니까 하는 것은 냉정하게 보면 필요없는 거다.

그 사람의 시간의 역사가 그림을 그리고, 그 사람이 사회를 바라보는 운율이 악보를 쓰게 한다. 몸과 마음을 훈련시킨다는 의미의 공부를 하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점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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