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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삿길로 떠밀리는 젊은이들/ "취직 못한 친구들 장사하겠다면?…말리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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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삿길로 떠밀리는 젊은이들/ "취직 못한 친구들 장사하겠다면?…말리고 봐야죠"

입력
2008.09.29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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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지는 폐업 신고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서 와플 가게를 운영하는 박양근(38ㆍ여)씨는 올들어 매달 4, 5명의 대학생이 찾아와 “가게를 열고 싶은데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곤혹스럽다고 했다. “‘종업원을 두고 장사를 맡기면 되냐’고 묻는 여대생들에게 내가 어떻게 장사하고 있는지 들려주면 다들 놀라서 돌아갑니다.”

취업보다 장사로 돈 버는 게 더 바늘구멍인 것이 자영업계의 현실이지만, 대부분 젊은이들은 ‘원하는 기업에 못 갈 바에야 장사하자’며 쉽게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2004년 대학 졸업 직전 인천 구월동에 노래방을 열었던 김모(29)씨는 창업 초기만 해도 기대에 부풀었다. 젊은 층이 많이 몰리는 상권이어서 잘만 하면 하루 50만원 매출은 올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의 퇴직금 1억원을 투자해 노래방을 인수했다.

그러나 노래방의 하루 매출은 1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3개월만에 가게를 접으려 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노래방 건물이 건물주의 대출 담보로 잡혀 있었던 것. 계약 전에 등기부등본을 떼 봤지만 보는 방법을 몰라 그냥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노래방이 경매로 넘어가면 투자금 전액을 날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김씨는 올 초까지 임대료보다 비싼 대출이자를 주인 대신 갚고 나서야 가까스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노래방을 접을 수 있었다. 김씨는 “취업을 못한 친구들이 장사 하겠다고 많이 묻지만 일단 말리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 모 대학 창업동아리 출신인 김모(28)씨도 의욕만 앞섰다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김씨는 2006년 미국의 유명 브랜드 속옷을 들여와 인터넷으로 판매했지만, 문을 닫기까지 3개월동안 주문은 단 4건에 그쳤고 아직도 재고를 처분하지 못했다.

한국인 체형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다시 석 달을 준비해 돌침대 판매에 도전했지만, 1년여 동안 주문이 단 2건에 그쳐 폐업을 했다.

창업은 했지만 직원관리가 힘들어 문 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 졸업 이후 치킨점을 열었다가 실패한 뒤 청소대행업체를 인수했던 김모(30)씨는 매달 순수익이 수백만원이 됐지만, 나이 많은 직원들과의 마찰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영업을 포기했다.

FC창업코리아 강병오 대표는 “통상 창업준비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지만, 젊은이들은 1, 2개월만에 문을 여는 경우가 많다”며 “처음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 자영업자와의 경쟁에서 이길 것 같지만, 3개월이 안돼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 '바늘 구멍' 성공사례

자영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젊은이들은 많지 않다.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극소수에 불과하다. 10명 가운데 1명이 채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살아남은 젊은 자영업자들은 하나 같이“비결은 오로지 발품”이라고 강조한다.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는 이지영(31·여)씨. 지금은 월 매출 1,200만원에 백화점에도 납품하는 어엿한 ‘사장님’이지만, 출발은 ‘좌판대’였다.

대학에서 아동학을 전공한 이씨는 3년 전 다니던 학습지 회사를 그만두었다. 답답한 근무환경이 싫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씨는 자신이 취미로 만들던 액세서리 납품처를 찾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인사동 가게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이씨는 지인의 도움으로 인사동 거리에 좌판을 폈다. 비록 좌판에 불과했지만, 간판도 예쁘게 달았고 애프터서비스도 성실하게 했다.

그러나 한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에 액세서리가 달궈져 애를 태웠고,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 탓에 매출이 뚝 떨어져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사장이 된 지금도 이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하루 13시간을 일한다.

집과 가게, 시장만 오갈 뿐이다. 이씨는 “젊은 가게 주인들 중에서 좌판경험없이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며 “살아 남으려면 직장생활의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대학로에서 트럭을 이용해 옷과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이금선(29·여)씨 역시 “바닥에서 일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트럭을 타고 대학로로 출근하는 이씨는 “많은 젊은이들이 옷이나 액세서리 가게를 열고 있지만, 10명 중 8명은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다”고 말했다.

직원 7명을 둔 작은 인쇄업체를 운영하는 원모(29)씨. 대학 시절 창업에 뛰어든 그 역시 4번의 실패를 겪었다. 2002년 30만원을 투자해 인터넷 애견용품 쇼핑몰을 열었다가 6개월 만에 문을 닫았고, 이후 수입명품 인터넷 쇼핑몰, 여성의류 인터넷 쇼핑몰을 시도했지만 줄줄이 실패했다.

가게를 내고 일본에서 옷을 떼다 팔기도 했지만 역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원씨는 지난 5년여 동안 하루 평균 2~3시간을 자면서 매일 5, 6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나는 강행군 끝에 월 매출 4,000만원의 인쇄업체 사장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이 사업도 어떻게 될지 몰라 늘 긴장 상태”라면서 “편하게 장사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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