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주 금융위기로 고단한 인생을 사는 전 세계인의 속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그는 23일"전 세계 수백만 명이 밤잠을 설치며 은행계좌와 펀드의 안전과 집값 하락을 걱정하게 만든 장본인들을 색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총회 참석차 금융위기의 진원지 월 스트리트가 있는 뉴욕에 도착한 직후 이 발언이 나와 더 후련했다.
그는 유엔에서 '규제 받는 자본주의'를 언급했고, 프랑스로 돌아가 "현 세계금융 질서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뜯어고쳐야 한다"며 고삐 풀린 미국식 질서 개편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속 시원한 사르코지의 일갈
중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현 위기가 일정액의 담보나 현금을 밑천으로 수 배, 수 십 배의 신용을 남발한 미 금융기업의 탐욕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하는 중국도 사르코지 식 통제와 다극화한 금융질서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위기가 커졌기 때문에 능력과 책임이 있는 여러 주체가 새 질서를 만들자는 것이다.
인민일보는 22일 "질서를 바꾸자는 주장은 위기로 입은 피해가 분해서가 아니라 책임과 능력에 따라 질서를 재편하자는 것"이라며 "이는 세계권력 이동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혼자 책임질 형편이 못되니 여러 나라가 주역으로 나서자는 목소리이다.
중화권 최고 경제분석가인 앤디 시에는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신용위기는 10조달러 이상의 외환을 보유한 중국, 일본, 쿠웨이트 등의 도움만으로 해결되며, 미국은 금융기관을 이들에게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기 돌파를 위해 5조~8조 달러가 필요한 미국이 돈을 마구 찍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을 작정이라면 외환보유 대국들에게 손을 내밀면서 금융기관 지분과 자산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월가의 권력을 여러 나라에 분산하자는 논리이다.
위기원인에 천착해 활로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음미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해법만 좇다 빈부격차 심화 등 신자유주의 고질병을 앓은 경험이 있다. 11년 만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진지한 성찰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규제 완화로 미국식 금융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에서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실현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된 사르코지 대통령이 변신한 까닭은 줏대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국제금융환경이 규제를 요구하는 데 따른 필연적 적응과정이다.
11년 전 잘못 되풀이하지 않게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 시도에 대한 정치권의 융단폭격 식 비판도 아쉽다. 시점, 인수대상 측면에 문제가 많았지만 발상 자체는 고려의 가치가 있었다. 7,000억 달러를 투입해 부실채권을 사 주겠다는 미국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 일본 금융사들이 리먼브러더스와 모건스탠리의 지분 등을 사들이는 등 각국은 소리없이 월가를 잠식중이다. 정치권의 뭇매질이 우리 금융기관의 발목을 잡을 듯해 염려스럽다.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하루 하루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질서에 맞도록 체질을 바꿔 변화의 흐름을 타는 것이다. 진지한 성찰과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영섭 베이징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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