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은 열닷새 동안의 기간을 뜻하기도 하고, 음력으로 그 달의 열다섯째 되는 날을 가리키기도 한다. "올림픽 경기는 보름 남짓 계속 돼" 할 때의 보름은 첫 번째 보름이고, "모레가 정월 보름이야" 할 때의 보름은 두 번째 보름이다. 두 번째 보름을 보름날이라고도 한다.
음력 한 달은 첫 번째 뜻의 보름 둘로 나뉜다. 초하루부터 열닷새까지가 선(先)보름이고, 열엿새부터 그믐날까지가 후(後)보름이다. 선보름을 선망(先望)이라고도 하고, 후보름을 후망(後望)이라고도 한다. 보름날은 선망과 후망의 경계이고 이음매다.
사전을 뒤적여 '보름'의 파생어나 합성어를 살피니, 보름치, 보름차례, 보름사리, 보름달 따위가 눈에 띈다. "보름치 먹을거리를 사재기해 놨어" 할 때의 '보름치'는 누구나 알아들을 테지만, "보름치 때문에 오늘밤 달 보기는 글렀어" 할 때의 '보름치'는 여느 사람들의 귀에 설 것이다. 이때의 '보름치'는 "비나 눈이 오는 음력 보름께의 궂은 날씨"를 가리킨다.
보름차례는 음력 보름날마다 집안 사당에 지내는 차례를 뜻한다. 망다례(望茶禮)라고도 한다. 이 풍습을 지금까지 지켜오는 집안은 종갓집 가운데서나 드문드문 발견될 것이다. 보름사리는 음력 보름날의 사리를 가리킨다. 본딧말이 '한사리'인 '사리'는 음력으로 매달 보름날과 그믐날, 조수(潮水)가 가장 높이 들어오는 때를 뜻한다.
이와 반대로 조수가 가장 낮은 때는 '조금'이라 부른다. 한자어 '조감(潮減)'이 변한 말이다. 음력으로 매달 초여드렛날과 스무사흗날에 해당한다. 보름사리는 또 보름 무렵에 잡힌 조기를 뜻하기도 한다. 보름달은, 누구나 알다시피, 보름밤에 뜨는 달이다. 한자로는 만월(滿月) 또는 망월(望月)이라 한다.
박애의 불덩이·公的 사랑까지 상징
'만월'은 시인 이시영의 첫 시집 표제다. 표제작 '만월'은, 그 첫 세 행 "누룩 같은 만월이 토담벽을 파고들면/ 붉은 얼굴의 할아버지는 칡뿌리를 한 발대/ 가득 지고 왔다"에서 암시되듯, 농촌의 궁핍한 삶을 그리고 있다.
('발대'는 '바랑'이라는 뜻일까? 시인의 고향을 염두에 두면 서남 방언인 듯싶은데, 그 쪽이 원향[源鄕]인 나에게도 낯선 말이다. ) 이 시의 마지막 행에서 만월, 곧 보름달은 '늙은 달'이라 표현된다.
어둠 속에 숨죽인 갈대덤불을 헤치고 떠오른 그 '늙은 달'이 비추는 것은 "썩은 덕석에 내다 버린 아이들과 선지피" 따위다. '덕석'은 추위를 타는 소(牛)의 등을 덮어주는 멍석을 가리킨다.
1970년대 농촌사람들의 힘든 일상을 으스스하리만큼 핍진하게 그린 이 수작(秀作)은 그러나 사랑의 시가 아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만월은, '늙은 달'이라 표현된 그 보름달은, 사랑의 말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 만지작거려 온 연애의 말이 아니다.
이 시의 어두운 분위기는 "송기를 벗기는 손톱은 즐겁고/ 즐거워라 이마에 닿는 할아버지 허리에선/ 송진이 흐르고/ 바람처럼 푸르게 내 살 속을 흐른다"며 노동의 즐거움을 부러 토로한 구절로 걷어내기엔 어림없을 만큼 짙다.
그러나 당대 공동체의 가장 어려운 삶을 그려내고 거기 연대의식을 지니는 것이 사랑이라면, <만월> 은 사랑의 시이고 '만월'은 사랑의 말이다. 비록 그 사랑이 내밀한 사적 사랑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이시영의 만월은, 그 '늙은 달'은 또렷한 연대감과 은근한 분노를 지펴서 피워낸 박애의 불덩이다. 만월>
'만월'의 동의어 '망월'은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동(洞) 이름이기도 하다. 이때의 망월은 보름달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달맞이라는 뜻일까? '망(望)'을 동사로 여기면, 이 말은 '달을 바라본다' '달맞이를 한다'는 뜻이 된다.
그 때의 '망월'은 '만월'이나 '보름달'의 동의어가 아니다. 어찌됐든, 이 망월은 1980년 5월항쟁의 기호이면서 5월학살의 기호다. 항쟁의 주체가 바랐던 것은 민주주의였고, 학살의 주체가 바랐던 것은 군부독재였다.
그러니까 망월동의 '망월' 역시, 이시영의 '만월'처럼, 사적 사랑의 언어는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좀 더 살만한 공동체를 향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망월동의 '망월' 역시 공적(公的) 사랑의 말이라 할 수 있을 테다.
날 것의 성애와 연결시키기도
보름달을 날것의 성애와 연결시킨 시로는 김영승의 '병술 대보름'이 있다. 이 시의 중간쯤에 "나는 아직도/ 아프로디테의 엉덩이 같은/ 보름달 밑에서/ 컹컹."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화창> 이라는 제목의 근간 시집에 실려 있는 걸로 보아, 마흔은 한참 넘긴 뒤에 쓴 시렷다! 시인의 동년배로서, 도무지 시들 줄 모르는 그의 생기가 부럽다. 시 표제의 '대보름'은 '대보름날'의 준말로, 음력 정월 보름날이라는 뜻이다. 화창>
옛사람들은(일부 요즘 사람들도) 이 날이 되면 달맞이를 하며 소원을 빌고('사랑이 이뤄지게 해 笭軻? 하는 소원도 당연히 포함된다), 불놀이를 하고, 잣 호두 밤 땅콩 같은 부럼을 먹었다. 그들은 대보름날 부럼을 먹으면 그 한 해 동안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고 믿었다.
정월 대보름은 그 해의 첫 보름날이라 해서 특별히 '대(大)'를 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늘상 쓰는 '정월 대보름'이란 말에서, '정월'은 사실 필요 없는 말이다. 정월말고는 어느 달의 보름에도 '대'를 붙이지 않으니 말이다.
심지어 대보름보다 훨씬 더 큰 명절인 추석도 팔월 대보름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이 날은 한가위(한가윗날)라 부른다. 한자어로는 가배절(嘉俳節: 사실 여기서 '가배'는 고유한국어를 음차한 것이다), 중추(中秋), 중추절(仲秋節)이라 부른다.
팔월 한가위를, 그러니까 추석을 그저 '가위'라고도 부른다. '가위'는 '가운데임' '가운데 있음'이라는 뜻이다. 그 '가운데'를 선보름과 후보름의 분계점(분계선)이라 해석해도 좋겠다.
그러니까 한가위는 '한가운데임' '한가운데 있음'이라는 뜻이다. '가위'라는 말의 어원을 캐기 위해선 '갑다'라는 가상의 형용사(또는 동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것은 일간신문 지면에 늘어놓기엔 너무 전문적이다.
아무튼 '한가위'는 그 달의 '한가운데임'을 뜻하지만, 이 말 역시, 대보름처럼, 아무 달에나 붙이지는 않는다. 오직 8월 보름만이 '가위'고 '가윗날'이고 '한가위'고 '한가윗날'이다. 그러니까 흔히 쓰는 '팔월 한가위'라는 말에서 '팔월'은, '정월 대보름'에서의 '정월'처럼, 남아도는 말이다.
붉다·밝다 對 불룩하다·부풀다
'보름'의 어원을 두고는 두 가지 견해가 맞서 있다. 첫째는 이 말을 '불'이나 '붉다', '밝다' 따위와 동계어로 보는 견해가 있다. 보름달은 가장 밝은 달이므로 그럴듯한 추리다. 둘째는 이 말을 '볼록하다' '불룩하다' '불어나다' '불리다' '부풀다' 같은 말들과 동계어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말들은 대체로 팽창이나 원형(圓形)과 관련이 있다. 보름달이 부푼 달이고 동그란 달이므로, 이 추리도 그럴듯하다. 더구나 매달 보름날은 조수가 한껏 부풀어 오르는 한사리 아닌가?
어느 쪽이든 '보름'의 어원은 사랑과 이어져 있다. 사랑은 붉게 타오르는 마음이자 밝게 빛나는 마음이다. 사랑은 부푼 마음이자 불룩한 마음이다. 사랑은 뾰족하지 않고 원만하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는 속담이 가리키듯,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랑은 그 밝음과 부풂의 절정에 이른 뒤 서서히 어두워지고 졸아든다. 지난해 가을 60년간의 사랑과 58년간의 부부생활을 동반자살로 마감한 철학자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은 '기울지 않는 보름달의 사랑'이라는 신화를 세상에 남겼다.
실제로 80대의 고르 부부가 서로에게 지녔던 감정이 20대의 그들이 서로에게 지녔던 감정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연인들에게나, 아무 부부들에게나 생기는 일이 아니다. 사랑은 그 주체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는 생리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영어에 문스트럭(moon-struck) 또는 문스트리큰(moon-stricken)이라는 형용사가 있다. 직역하면 '달에 얻어맞았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미쳤다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뜻이다. 옛 점성술사들이 사람의 발광(發狂)을 달의 발광(發光) 탓으로 여긴 데서 이런 표현이 나왔다 한다.
그 때의 달은 빛이 가장 밝은 보름달일 것이다. 보기에 따라 사랑은, 열정은 마음의 병이랄 수도 있다. 발광이랄 수도 있다. 보름달은 그 열정-사랑-발광의 선동자다.
노먼 주이슨의 1987년 영화 '문스트럭'에서도 보름달은 사랑의 연료다. 한 여성이 약혼자의 남동생에게 느끼는 감정을 중심에 놓고 이런저런 사랑을 훔쳐보는 이 영화에서 (행복한) '사고'를 예고하는 것은 어김없이 보름달이다. 다음 보름이 언제더라? 그 날, 사랑을 찾아 나서야겠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일러스트 김경진기자 jin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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