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욱 지음/문학동네 발행ㆍ296쪽ㆍ1만원
독서인은 지식인의 다른 이름이다. 그가 읽는 책은 그의 존재 근거다. 그리고 세계는 그에게 하나의 거대하고 복잡한 책이 된다.
소설가 김경욱(37)씨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이후 4년 만에 낸 다섯번째 창작집 <위험한 독서> 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김씨는 이 소설집에서 독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날것으로 드러낸다. 독서인으로서의 그의 읽기 대상은 '일정한 목적, 내용, 체제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으로 정의되는 물리적 '책' 을 뛰어넘어 사회, 문화, 인간으로 향한다. 세계는 곧 책이다. 위험한> 장국영이>
표제작은 아예 주인공이자 화자를 피상담자의 심리상태를 분석해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권하는 독서치료사로 설정했다. 7년 동안 사귀었지만 동침하지 않았던 남자친구를 '쿨'하게 떠나보내지 못한 젊은 여성이 화자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그는 그녀에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을 권하고, 그녀는 "참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라는 책 속의 한 문장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의 실체를 자각한다. 인간실격>
그녀와 동침함으로써 조바심을 빼앗은 주인공은 이튿날 아침 그녀 대신 '이젠 남자친구와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메모를 발견한다. 이때 책이란 "나를 읽어봐. 주저하지말고 나를 읽어봐"라고 유혹하는 인간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몰두하기 위해 귀농한 한 남성이 그때까지 몰랐던 아내의 어마어마한 독서편력을 확인하고 그녀가 외계인이 아닐까 의심한다는 내용의 '천년여왕', 글자를 배우기도 전에 상점 간판을 줄줄 외운 천재소년이 문간방에 세든 대학생의 방에서 공산주의 서적을 읽고 선생님 앞에서 책속의 문장들을 읊는다는 내용의 '게임의 규칙' 등은 지식인이 맞부딪히게 되는 책읽기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비유적 맥락에서 책 읽기가 '시대의 행간 읽기'임을 보여주는 단편도 있다. '황홀한 사춘기'는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을 배경으로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에 갇혀 욕망을 거세당했던 청춘의 방황을 위악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때는 단지 '좋았던 시절'이 아니라, 지강헌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치며 인질극을 벌이고, 정체불명의 사내가 TV 뉴스 도중 "내 귓속에 도청장치가 돼있다"고 외치기도 했던 부조리한 시대였음을 읽어낸다.
새 창작집에서는 작가 특유의 대중문화 코드의 활용이 줄어든 대신 유머의 활용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1993년 중편 '아웃사이더'로 등단, 다섯 권의 창작집과 네 권의 장편을 펴낸 등단 16년차의 김씨. 그는 "나이가 조금 들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넓어지면서 작품들이 다소 유머러스해진 내 삶을 반영하는 것 같다"며 이번 창작집에서 "열심히 읽고 밑줄 긋고 여백에 글을 쓰는, 내 삶의 방식을 형상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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