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큼직한 가마솥에 위장약 계통 각종 한약건재를 넣은 다음 물을 붓고 한참 달이면 약물이 우러나와 진한 팅크(丁幾ㆍ용액)로 변한다. 이것이 복방방향(複方芳香) 팅크다. 이 팅크를 솜을 깐 고운 체로 걸러낸 뒤, 곱게 빻은 수입약재 아선약(阿仙藥)과 정향(丁香)가루를 타고, 멘톨(박하)을 묘미 있게 배합한다.>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에 즉위했던 1897년 민병호 선전관(대통령비서실장 겸 경호실장 직책)이 급체나 소화불량에 대한 궁중비법을 백성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만든 메모의 일부다. 이렇게 만든 탕약이 '목숨을 살리는 물, 활명수(活命水)'다. 큼직한>
■지금의 활명수 제조법도 당시의 '탕약 비법'과 다르지 않다. 변한 것은 가마솥이나 체가 최신식 장비로 바뀌고, 손과 눈으로 짐작했던 '묘미 있는 배합'이 컴퓨터로 제어되는 정도다. '命(목숨 명)'이라는 말을 넣은 것은 당시 백성들에게 흔했던 질환이 급체나 소화불량이었기 때문이다. 먹을 수 없는 것도 삼켜야 했던 시절에 못 먹는 게 있을 리 없다. 언제 또 먹거리를 대할지 기약하기 어려웠던 터라 빨리 많이 먹어 두는 게 상책이니, 위장이 문제였다.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선전관이 황제에게 올리던 소화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활명수가 탄생한 지 지난 25일로 111년이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록상표(1909년)이며, 최초로 해외(만주국)에서 상표등록(1937년)과 제조허가(1942년)를 받았다. 회사 명칭 동화(同和)와 상징인 부채는 주역(周易)과 시전(詩傳)에서 따온 것인데, '화합하고 합심해야 민족이 살 수 있다'는 의미다. 100년 넘게 서울 중구 순화동에 자리잡고 있는 회사는 일제시대 상하이임시정부 서울 연통부(聯通府)의 거점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져 1995년 광복50주년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백성의 속을 편하게 해주고 번 돈이 임시정부에 들어간 것도 확인됐다.
■지금까지 국민들이 마신 활명수가 80억 병을 넘었다는데 요즘엔 접하기가 어려워진 듯하다. 예전처럼 아무데서나(?) 팔지 않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소화제에 대한 의약외품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나 반발이 큰 모양이다. 동화약품 활명수만이 아니다. 조선무약 '위청수' 종근당 '속청' 삼성제약 '까스명수' 등 생약성 액정소화제는 일본처럼 슈퍼나 동네가게에서도 쉽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소화기능을 높이기 위해 탄산가스를 섞고 있어 위염 위궤양 역류성식도염 등의 환자는 함부로 복용하면 해로울 수도 있다. 그 정도 주의만 잘 고지하면 되지 않을까.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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