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딘 지음ㆍ정명진 옮김/부글 발행ㆍ324쪽ㆍ1만3,000원
기억에는 '죄악'이 있다. 인간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아무리 선한 사람일지라도 어떤 환경에서는 악행의 행위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낯선 이유는 아직 인간의 뇌가 대부분 미지의 영역이어서다. 영국의 심리학자 제레미 딘이 사회심리학 분야의 여러 연구결과를 소개한 이 책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심리와 기억의 메커니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험결과들을 이용해 설명한다.
책은 먼저 '기억의 7가지 죄악'을 소개한다. 기억력이 너무나 강력해서 기침 같은 사소한 경험마저 몽땅 기억해 버리는 러시아 인의 사례를 들어 건망증을 앓는 일반인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준다. 왜곡되는 기억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호주의 심리학자인 도널드 M 톰슨은 TV방송에 나가 토론을 벌이는 동안 자신의 모습을 시청한 한 여성으로부터 강간범으로 지목되는 낭패를 당한다.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이 사건 직전에 TV로 톰슨을 보고 있었고, 그 기억이 무의식 중에 가해자와 섞이는 현상이 일어났던 것. 기억이 어떻게 현실을 날조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책은 또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무의식적 표절도 언급한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기억에 저장된 타인의 작품이 창작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표절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흔히 '부부의 얼굴은 닮아간다'는 이야기에 대한 답도 제시한다. 부부가 오랜 시간 서로를 공감하면서 상대방의 얼굴을 모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대로라면 세월이 흐를수록 부부는 더 많이 닮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블로그(www.spring.org.uk)에 실린 글들을 본 한국의 출판사가 저자와의 협의를 거쳐 엮은 것이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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