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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사태 '4者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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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사태 '4者 합작'

입력
2008.09.29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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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 전 GE 회장은 최근 미국 발 금융위기를 승객 전원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살인> 에 비유했다. 웰치 전 회장은 "이번 사태는 모기지 대부업자·감독당국·투자은행(IB) 등 시장 참가자 모두가 공범이고 그 중에서도 주범은 저주 받을 투자은행가들"이라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수많은 국내 중소기업들을 부도 위기에 빠뜨린 통화 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의 책임도 시장 참가자 전원에게 있다고 말한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임원은 "무모한 계약을 한 중소기업과 위험이 높은 상품을 만들어 판 은행, 사태를 전혀 파악 못했던 감독 당국이나 의도적으로 환율을 올린 정부 등이 모두 일정 부분 이 사태에 기여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상품에 내재된 위험을 간과하고 영세 중소기업에게까지 마구잡이로 판매한 은행들의 잘못이 지적된다. 지난해 하반기 일부 시중은행들은 기업들의 중복계약 여부를 확인하지 않거나 본점이 아닌 영업점 전결로 키코 판매에 적극 나섰다. 이 같은 판매 행태는 '키코 피해 급증→중소기업 도산→은행 부실자산 급증'이라는 연쇄고리를 통해 은행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 오고 있다. 당장 태산LCD의 흑자 부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하나은행은 26일 자금 담당 임원 두 명을 면직 처리했다.

환차익 욕심에 과도한 키코 계약을 한 일부 중소기업의 책임도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키코 계약을 한 480개 중소기업 중 68개사가 예상 외화매출액의 2배 가까운 규모의 계약(오버 헤지)을 했다. 키코를 통해 오히려 환차익을 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예상되는 외화 매출액의 범위 안에서 계약을 할 경우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은행에 되팔면 되지만, 이 범위를 넘어선 '오버 헤지'를 한 회사들은 더 많은 달러를 시장에서 두 배나 비싼 가격에 사야 하기 때문에 큰 손실을 입게 된다.

태산LCD도 160%가 넘는 오버 헤지를 했고, 이로 입은 손실을 더 위험한 피봇(PIVOT) 계약을 통해 '물타기' 하려다 결국 흑자 부도를 내고 말았다. 세계 점유율 1위 상품을 생산하는 모 우량 중소기업도 지난해 짭짤한 환 차익을 누린 후 또다시 이익을 볼 욕심에 오버 헤지를 했다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감독당국과 정부의 책임도 지적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은행들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키코 영업을 벌였을 때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고, 연초 언론에 의해 키코 피해가 알려진 뒤에도 피해가 한참 커진 후에야 규모를 파악하는 등 늑장 대응을 했다.

연초 의도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편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 키코 피해 기업은 "은행도 밉지만 정부도 정말 밉다"면서 "어차피 환율은 올라갔겠지만 장관이 나서서 연초에 의도적으로 환율을 올려놓지만 않았어도 이 정도로 피해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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