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 의성IC에서 나와 봉양을 거쳐 동쪽의 춘산으로 가는 길. 넓은 들판에 갑자기 우뚝 솟은 산 하나가 시선을 잡아당긴다. 이제 막 벼가 누렇게 익기 시작하는 들판을 바닥에 깔고 청명한 하늘을 향해 치솟은 산의 모양이 여느 산들과 다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화산이라는 금성산(531m)이다. 이 산이 용암을 뿜어낸 것은 중생대 백악기인 약 7,000만년 전. 백두산과 한라산이 분출한 신생대 제4기(2만4,000~150만년 전)보다 훨씬 앞선다.
그 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를 양분 삼아 자라는 것이 유명한 의성 육쪽마을이다. 금성산이 안고 있는 것은 마늘 뿐이 아니다. 산 그림자 닿는 곳곳에 역사가 흐르고 아늑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 금성산 자락에 신라 경덕왕과 다른 또 한 명의 경덕왕이 누워 있다. 금성면 대리리 고분군에 있는 왕릉의 주인이다. 조문국이란 나라의 왕이었다. 조문국은 상주의 사벌국, 청도의 이서국 등과 같이 의성 땅을 기반으로 나름의 문화를 꽃피웠던 성읍 국가로 185년 신라에 정복됐다.
삼국사기에 신라 벌휴왕 2년에 멸망했다는 기록만 남은 부족국가이지만 왕의 무덤을 크게 세우고 이와 비슷한 수백의 고분이 주변에 널려있는 것을 보면 이 꽤 번창했음을 알 수 있다.
금성면의 중심 마을인 탑리는 마치 드라마 세트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단층 건물이 늘어선 동네의 세탁소, 목공소, 만화가게 등 삐뚤빼뚤한 글씨의 간판들이 정겹다.
마을 한가운데에 마을 이름을 있게 한 탑이 서 있다. 국보 77호인 탑리 오층석탑이다. 전체적으로 붉은 빛깔을 띤 고탑은 많이 깨어지고 갈라진 모습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부분적으로 벽돌탑인 전탑의 수법을 모방하고 또 목조건축의 양식도 띠고 있는, 우리나라의 석탑 양식의 변화를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문화재다.
첫눈에 "참 잘생겼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탑에는 황토빛 시간의 색이 곱게 내려앉았다.옥개석 위엔 그 시간의 더께를 양분 삼아 마른 풀이 자라고 있다.
아무도 없는 탑 주변에 혼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들고 있는데 갑자기 요란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옆 여학교의 점심시간이다. 음악 소리와 함께 여학생들의 생기발랄한 수다 소리도 함께 창 밖을 타고 넘었다. 이 탑은 천년이 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노래를, 많은 이야기를 듣고 서 있었을까.
인근 산운리에는 '대감마을'로 불리는 산운마을이 있다. 전통 양반촌으로 영천 이씨 집성촌이다. 40여 채의 전통가옥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마을이다. 구불구불한 곡선의 골목길로 연결된 마을에서 일반인들이 구경할 수 있는 집은 소우당 운곡당 점우당 등 세 집이다. 옛집의 정취가 물씬한 마을의 가장 큰 고택들이다.
이중 소우당은 안채 서쪽에 있는 너른 별당채가 구경거리다. 한반도 지도 모양의 인공연못과 노송이 조화를 이룬 정원엔 자그마한 별당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19세기 양반가의 풍류와 운치를 잘 보여주는 별서건축의 귀중한 자료다.
인근의 빙계계곡은 삼복 더위에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에는 더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신비의 계곡. 빙산이라 불리는 산 곳곳에 뚫린 구멍에서 천연 에어컨 바람이 뿜어져 나온다. 빙혈은 한여름이면 수은주가 영하 4도를 가리킨다고 한다. 빙혈 인근에는 탑리오층석탑을 닮은 빙산사지오층석탑이 서있다.
제오리에는 화산이 터지던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천연기념물 제373호로 공룡 발자국의 개수는 316개. 발의 구조와 크기, 보폭 등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의성IC 인근의 봉양에는 탑산약수온천이 있다. 유황냉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봉양 읍내에는 의성마늘한우를 싸게 먹을 수 있는 한우타운이 조성돼 있다.
읍내 가운데에 있는 축협판매점에서 직접 고기를 사서는 이화숯불가든(054-832-2020) 등 인근 13개 식당에서 상차림비(1인당 3,000원)만 내고 구워 먹을 수 있다. 저렴하게 최상급의 한우를 먹을 수 있어 주말이면 대구 등지에서 많은 이들이 몰려든다.
의성=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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